오피니언

[동십자각] 실적 스트레스

올해 초 ‘월급쟁이의 꽃’이라는 임원에 오른 김모 상무는 요즘 편두통에 시달리며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 회사에서도 오후가 되면 피로가 심해져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답답한 나머지 병원에 가봐도 스트레스성 두통이라고 얘기할 뿐 뚜렷한 처방을 내놓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회사 실적이 좋지 않아 이래저래 신경을 쓰다 보니 병으로 번진 듯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 기업체 임원들을 만나보면 실적이 부진한 탓에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다며 하나같이 울상을 짓고 있다. 심장병이 도졌다거나 오십견에 걸렸다는 등 평소 앓던 지병을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주요 그룹사 임원들은 이르면 오는 10월 말부터 내부실적 평가에 들어간다. 자신의 한해 영업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조직활동이나 사회봉사활동까지 일일이 점수를 매겨 보고서를 올려야 한다. 이 성적표는 곧바로 연초 인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 심하면 강제로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살벌한 전쟁터다. 임원들이 이처럼 ‘살 떨리는 가을’을 맞고 있는 것은 올해 실적이 그 어느 때보다 나쁘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이 122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비관적인 전망 일색이었다. 응답 기업의 80% 정도가 연초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룹 임원들로서도 할말은 있을 듯싶다. 올해 유가나 환율 등 대외변수가 워낙 불리하게 돌아간데다 경영권 위협, 정부 규제 등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성적표 한장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나머지는 구구한 변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 정부는 어떤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아무리 경제성적이 나쁘고 민생이 어려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려는 모습만 국민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심지어 경제와 민생은 따로 간다는 논리까지 동원한 대목에서는 할말을 잊게 마련이다. 연말 실적 평가에서 비록 올해 성적은 나쁘지만 10년 후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변하는 임원이 있다면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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