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원화강세 추세 받아들여라

마을 전체를 전소시키거나 대규모 인명피해를 만들어낸 ‘초대형 화재’의 교훈은 거의 똑같다. 그동안 준비해놓고 있던 방재시설로는 화마의 힘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 이 때문에 초대형 화재가 발생한 후에는 항상 준비를 소홀히 한 ‘인재(人災)’라는 낙인을 붙인다. 우리 사회는 하지만 항상 그뿐이다. 그 화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명과 재산상의 희생을 치렀는지, 어떻게 하면 또 다른 화재를 예방할 것인지, 아니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시킬 방법은 어떤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는 매번 변죽만 울리다 끝낼 뿐 딱 부러지게 대응하지 못했다. 달러약세, 피할 수 없는 고갯길 여기까지가 그동안 기자의 눈에 비친 우리 사회의 습성이다. 최근 외환시장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환율변동 속도와 폭을 잡아보겠다고 공언하지만 시장 여건이나 흐름을 살펴보면 말처럼 쉬워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나서면 ‘고맙다’는 식으로 보유 달러를 내다파는 모습조차 보여진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시장의 흐름을 되돌리려면 달러를 내다파는 세력들의 기세를 꺾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된다면 원ㆍ달러 환율이 적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정부 스스로 ‘반드시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하겠다’고 공갈포를 남발하다가 발목이 잡히거나, 결과가 거꾸로 나타난다면 그 말을 믿은 개인이나 기업은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아주 심한 경우에는 그나마 지니고 있는 정부의 외환시장 영향력을 상실해 ‘환율 쓰나미’가 들이닥치는 국가적인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정부도 다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원화강세 기조는 갈수록 약해지는 미국 달러화 가치와 어느덧 훌쩍 커진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바탕이 되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달러를 팔려는 힘이 사려는 힘보다 강하기 때문이지만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기자가 만나본 시장 전문가들이나 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대부분은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강한 달러를 유지할 힘이 없다”며 “최근 두드러지게 진행되고 있는 달러약세는 사실 지난해부터 예고됐던 것”이라고 말한다. 각도를 달리해 바라보면 원화강세가 위험한 것만도 아니다. 원고 시대가 펼쳐지면 개인들은 즐겁다. 값싼 물건이 수입되면서 장바구니 물가를 진정시킬 것이고 해외여행을 한 번 하더라도 예전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즐길 수 있다. 문제는 밖에서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기업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진행된 환율 변동폭은 벌써 7%를 웃돌고 있다. 웬만한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이익률이 평균 5% 내외였다는 점에서 지금 진행 중인 환율 변동폭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환율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기업하기가 진짜 힘들어질지 모른다. 여기까지가 환율과 관련한 인식을 바꾸지 않은 채 살펴본 상황이다. 겁먹지 말고 현명한 대처를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보자.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 기업들에 펼쳐져 있던 경영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다. 당시 환율은 1달러당 700~800원대 였으며 당시 금리는 12~13%대가 평균이었다. 게다가 구조조정을 겪지 않아 먹여 살릴 종업원 숫자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환율변동 속도와 폭을 참아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겁먹거나 비명 지르지 말고 강한 원화를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느낄 수 있어야 봄옷도 장만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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