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한국까르푸 10년

지난 96년 7월 부천 중동, 까르푸라는 생소한 이름의 대형 할인점이 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국내 유통시장이 개방된 시점이라 이 다국적 기업의 등장은 국내 유통업계를 잔뜩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세계 최초로 슈퍼마켓과 할인판매점ㆍ창고소매업의 장점만을 결합한 ‘하이퍼마켓(Hypermarket)’이라는 신업태를 창안한 까르푸는 30여개국에 9,0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세계 제2위의 유통업체로 그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6년 4월28일, 까르푸는 한국의 모든 매장을 이랜드에 넘긴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기업의 오만 까르푸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립 브로야니고 대표는 ‘1등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라고 밝혔지만 상황은 이보다 더 심각했다. 2ㆍ3등에도 못 끼었다. 그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철저한 현지화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한국인 체형이 맞지 않는 2.2m 높이의 매대와 한국 고객의 변화무쌍한 취미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 여기에 한국인을 전혀 모르는 프랑스인 한국법인장과 지점장들은 고집스레 서구형 까르푸를 고집했다. 지난해 까르푸 영업이익률은 1.48%로 업계 최하위 수준. 국내 32개 매장 중에서 분당 야탑과 서울 상암매장 등을 빼면 대부분 적자다. 은행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치는 이익을 내는 까르푸는 분명 한국과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까르푸가 떠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국에서 재기를 위해서는 투자가 따라야 하는데 지난 10년 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결과’가 될 것이 뻔할 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한 유통업계 전문가의 말이 이를 대변해준다. 마지막 결별작업은 참담한 경영실적 못지않은 추악한 모습이었다. 매각과정에서 도출된 일련의 ‘더티 게임’은 까르푸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 까르푸의 매각설은 최근 몇 년 새 새록새록 흘러나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됐다. 까르푸는 지난해 11월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라며 롯데쇼핑을 ‘허위사실 유포’로 공정위에 제소했다. 이어 올초까지만 해도 '한국화 원년' 운운하며 매각소문을 부인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이미 한국결별을 결정한 상황이었다. 3월 들어 본지 등 일부 언론에서 ‘까르푸 매각’이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만 해도 까르푸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언론과 밀고 당기는 게임을 한 지 한 달 후인 지난 4일 갑자기 롯데ㆍ신세계ㆍ홈플러스ㆍ이랜드 등이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히면서 공식적으로 한국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하지만 우선협상자 발표는 더 가관이었다. 4개사 모두 대상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국내 할인점업계의 경쟁심리를 이용한 몸값 올리기 유도, 매각작업 중간에 인수 가격이나 옵션 등을 공개해 경쟁을 시키는 등 가장 추잡한 M&A 중 하나라는 오명을 남겼다. '망했어도 돈은 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아 있다. 까르푸도 론스타와 같은 ‘먹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까르푸는 영업에는 실패했지만 부동산ㆍ환차익 등으로 매각차익은 최대 1조원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까르푸는 우리나라와 이중과세방지협약을 맺은 네덜란드까르푸가 80%, 프랑스까르푸가 20%를 투자해 과세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프랑스와 체결한 협정에는 주식거래 기업의 부동산이 총자산의 절반 이상인 경우 매매차익에 대해 과세할 수 있도록 돼 있어 20% 부분에 대해서는 과세가 가능하다. 만약 네덜란드까르푸를 프랑스까르푸가 소유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매각차익 전반에 걸친 과세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까르푸의 한국진출 10년, 그들은 경영실패로 떠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을 챙겨간다. 이익에 대한 세금을 안 낼 수도 있다. 우리 토종 할인점의 당당한 승리에 갈채를 보내는 이면에, 장사에 망했어도 돈을 벌어가는 모순이 과연 어디서 출발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지금이라도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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