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업] 냉온탕식 부동산대책은 그만
경기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큰 그림' 그려야원칙없는 규제·부양책 되풀이…시장만 초토화임기응변식 아닌 철학·원칙담은 종합대책 필요
최석영 기자 sychoi@sed.co.kr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건설업체들은 수도권 택지가 바닥을 드러내자 앞 다퉈 부산과 대구ㆍ울산ㆍ광주ㆍ대전ㆍ천안 등 지방으로 몰려갔다. 분양만 하면 청약이 완료되는 부동산경기 호황국면에서 지방의 외곽 땅에까지 아파트를 지으려는 업자들로 북적댔다. 결국 당시 택지개발로 지난해와 올해 분양한 지방 아파트들은 대부분 미분양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건설업체 연쇄도산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 값을 잡기 위한 규제에만 골몰했을 뿐 지방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지방에 개발호재를 제공해 땅값을 크게 뛰게 만들었고 땅값 상승은 아파트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져 지방 아파트가 3.3㎡당 1,000만원 이상의 고분양가로 분양시장에 나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주택건설업 위기, 미분양 해결이 관건=현재 건설업체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미분양 증가로 볼 수 있다. 미분양이 증가하면 대출자금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현금흐름도 악화된다. 또한 이자부담, 재무구조 악화 등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 주택건설 업체는 결국 도산에 봉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분양 주택이 늘기 시작한 때는 2003년 10ㆍ29대책 이후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과 지방의 주택공급 증가가 맞물리면서 미분양 주택이 늘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 대책이 건설업을 위기로 이끈 셈이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7만1,818가구였던 미분양은 2007년 10월 10만887가구, 2008년 8월 16만가구로 폭증했다. 그러나 이는 대외적인 부분으로 신고하지 않은 미분양 수치까지 더하면 적어도 20만가구는 넘어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30만가구 가까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요한 서강대 교수는 “정부 정책이 시장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시행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을 볼 때 시장상황이 바뀌면 제도도 또 바뀔 것”이라며 “경기변동과 독립적으로 미분양 해소를 위한 큰 그림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무만 보는 부동산정책=지난 10년 동안의 부동산대책은 건설경기 부양과 부동산 규제의 되풀이였다. 1998년 IMF 사태 직후 국내 경기가 바닥을 헤매자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건설경기 부양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당시 정부는 규제를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는 건설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평균 4개월에 한번꼴로 경기부양대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2002년 이후 규제완화의 후유증으로 집값이 1년 사이 16%나 폭등했고 정부는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조치를 시작으로 이번 부동산시장 안정대책까지 잇달아 내놓았다.
2003년 참여정부 들어서도 정부는 수도권 투기과열지역 지정 등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한 대책을 대거 쏟아냈으며 2005년에는 다양한 부동산시장 안정화대책을 발표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미국발 세계경기 위축으로 또다시 악화된 건설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출범 직후부터 기업토지 4조3,000억원 매입, 미분양주택 2조원 매입, 수도권 투기지역 해제, 재건축규제 완화 등 10년 전 대책의 복사본에 가까운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결국 경기부침에 따라 원칙 없이 부동산 규제책과 건설경기 부양책이 교차하면서 우리 부동산시장을 초토화하는 형국이다.
◇정부 철학과 원칙 담은 부동산대책 필요=이명박 정부 들어 거의 매달 한번꼴로 규제완화 중심의 부동산대책이 발표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행해진 규제들을 한풀이하듯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책 수단과 시기, 그리고 폭에 대한 선택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정책이 지나치게 임기응변식이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수도권 1가구1주택 비과세 거주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적용시기를 연기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삭제해버리는 식이다. 이렇게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어렵게 돌아간다는 점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새 정부의 정책철학이 빈곤하거나 정치력이 부족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진정으로 부동산경기도 살리고 건실한 건설업체도 구제하려면 철학과 원칙을 담은 부동산정책의 종합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경기에 상관없이 수행해야 할 정책과 경기조절을 위해 사용해야 할 정책을 구분해서 시행해야 한다”며 “종합적인 그림 없이 과거 정부의 정책을 부분적으로 완화하기만 하는 방식은 규제완화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의 관망을 유인하는 방향으로 작동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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