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영화 리뷰] 타인의 삶

악랄한 동독 비밀경찰 인간성 회복과정 그려<br>주인공 심리표현 연기 볼만<br>시종 긴박감 주는 연출 탁월


잔인한 악인에서 어느 순간 위대하고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로의 변신은 가능할까. '타인의 삶'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선하게 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영화다. 자유와 선을 갈구하는 예술가를 도청하던 비밀경찰이 이에 동화돼 점차 선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시켜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2007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강력한 경쟁자였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를 제치고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무대는 아직 공산주의의 살벌함이 가시지 않던 1984년 옛 동독. 악랄하기로 유명한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요원 비즐러(울리히 뮈헤)에게 어느날 경찰학교 동기이자 슈타지의 상사이기도 한 그루비츠가 어떤 인물의 도청을 지시한다. 도청의 대상은 극작가인 드라이만. 그는 탐욕스럽고 부패한 문화부 장관이 군침 흘리는 여배우 크리스타의 연인이기도 하다. 이 도청은 드라이만에게서 연인을 빼앗아 문화부 장관에게 넘기려는 그루비츠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된 것. 결국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생활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감시가 계속되면서 비즐러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가진 두 사람과 이들의 주변인들을 지켜보면서 점점 이들에 동화되기 시작한 것. 악랄하고 냉철하기만 했던 비즐러는 인간에 대한 진심과 자유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하고 이를 채워주지 못하는 체제에 대해 허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비즐러는 드라이만 커플을 도청하는 대신 이들을 동경하고 마침내 그루비츠의 마수로부터 보호해 주기 시작한다. 영화는 비즐러라는 인물의 심경의 변화에 대해 그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는 비즐러를 따라가고 그의 모습을 비춰줄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관객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하기만 한 비즐러의 심리적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는 섬세한 심리 변화를 스토리, 음악, 카메라 움직임 등 영화의 모든 요소를 동원해 관객에게 전달한 연출력 뿐 아니라 주연 울리히 뮈헤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얼굴의 움직임 하나로 주인공의 내면의 변화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그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상대방의 삶과 일거수 일투족을 비밀경찰이 도청한다는 설정과 독재 치하의 차가운 분위기 등은 상영시간 내내 긴박함을 연출한다. 특히 그루비츠가 비즐러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후부터의 영화의 긴박감은 웬만한 할리우드 스릴러에 버금간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감독의 재주가 남다르다. 때문에 만만치 않은 주제를 가진 영화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