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光植(언론인)시장에서는 많은 상품들이 나와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저마다 가격· 품질· 디자인을 내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소비자들은 유권자가 돼 매일 매일 상품에 대한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런 가운데 저질 제품, 수상한 상품들은 도태된다. 때로는 그럴듯한 물건이 소비자를 현혹하기도 하지만 곧 퇴출된다. 물론 독과점 제품이 나와 선택을 강요하는 폐해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규제법과 사회적 감시 압력으로 견디기가 힘들다. 이렇게 보면 시장은 참으로 민주주의다.
좀 모호한 비유일지 모르나 선거판도 시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저마다 고매한 인격과 경륜과 명성을 내걸고 나온 총선 입후보자들은 이를테면 선거시장의 상품들이다.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들은 이들 상품에 「귀중한 한표」를 던진다. 이치로 따지면 가짜 상품, 저질 제품은 투표권 행사를 통해 퇴출 도태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수상한 제품, 불량제품은 여전히 활개를 친다. 아무리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이 제품은 결격」이라고 경고해도 「그래도 팔릴 것」이라며 막무가내다.
한달 뒤에 열릴 총선 시장의 관심사는 크게 보면 시민연대의 낙선운동과 지역주의의 대결이다. 여론조사는 「불량상품」 퇴출을 9대1로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의라는 우산 속에 수상한 제품들이 또 다른 판을 벌이고 있다. 문제가 복잡한 것은 우량상품들까지도 그 영향을 배제하지 못하는 왜곡된 틀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불량상품들」은 얼마나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될까. 그래도 전문가적 입장에 선 예측이라면 기자들이다.
한국기자협회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총선에 미칠 영향력은 「낙선운동」 3(30.9%)에 지역주의 6(59.4%)으로 나와 있다. 다소 분석상에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불량상품들」은 이 확률을 노린 도박을 걸고 있는 셈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기자들의 93.5%가 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을 타당하다고 보고 있지만 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불량상품· 가짜상품은 이번에도 매기(買氣)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하긴 옛날 한때는 「가짜담배」가 「진짜담배」보다 잘 팔린 때도 있었다. 그땐 가짜(미국 담배꽁초를 원료로 만든 것)가 진짜 보다 맛이라도 좋았었다. 국산담배의 품질개선 배경에는 이런 소비자의 선택 압력이 깔려 있다. 맛도 없는 정치상품 강매와는 다르다. 아무래도 이 땅에선 정치판의 민주주의보다는 경제적 시장주의가 그래도 여러발 앞서 진화(進化)하고 있는 것 같다.입력시간 2000/03/13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