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제에 의해 격하된 고종황제 장례

초라한 시신 안치 레일로 운구 이송<br>정성길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소장 사료


3ㆍ1운동의 기폭제가 된 고종황제의 장례식이 일제에 의해 격하된 채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사진이 26일 공개됐다. 사진 연구가 정성길(68)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은 1919년 3월 3일 진행된 국장을 담은 소장 사진 20여점 중 일부를 공개했다. 첫번째 사진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갑작스레 승하한 고종황제의 시신을 외부에 안치한 모습을 담고 있다. 짚으로 만든 가건물 형태로 황제의 시신을 모셨으며 황룡기 등 임금을 상징하는 표시가 전혀 없이 초라하다. 두 번째 사진은 안치된 시신을 장지로 옮겨가는 과정 중 대한문을 넘어서기 직전의 장면이다. 보통은 상여꾼이 운구를 매고 이동하지만 특이하게도 바닥에 레일을 깔아 관을 운반하고 있다. 정 명예관장은 “마치 수하물을 옮겨가듯 관을 운반하는 모습은 황제의 장례를 격하시키려는 일제의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운구는 대한문을 떠나 장례행렬을 이루며 종로와 청량리를 지나 금곡 홍릉에 이르게 된다. 세 번째 사진은 상주로서 대지팡이를 짚고 장례식을 지켜보는 순종(가운데)이 주변 인물의 부축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맨 왼쪽에 군복을 입은 일본 군인의 모습이 보여 당시 국장이 일제의 감시 하에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공개된 사진 중에는 일본전통 제례 복장을 갖춘 인물들이 행렬을 이끄는 모습이 있어 당시 장례가 전통적인 조선 왕조의 의례가 아니라 일본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 치러졌음을 보여준다. 고종황제의 장례 기간인 3월 1일에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가 선포됐고 이어 3일 진행된 국장을 기점으로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정 명예관장은 “사료적 의미 때문에 지속적으로 근현대 사진을 모아왔고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이 겪었던 참사를 알고 역사의 오류도 바로잡을 수 있길 바란다”며 사진 공개의 배경을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