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의 더이상 '안전지대' 아니다
[화의취소 의미] 인가조건 불성실이행에 철퇴
부산지법이 부도난 기업중 화의인가 결정을 통해 관리감독하던 27개 기업중 화의인가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4개 업체에 대해 직권으로 첫 화의 취소결정을 내리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그동안 부도 기업주들이 화의인가결정만 받아내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화의 기업이 되기 위해 `장밋빛 변제계획'을 제시하며 채권자들과 법원을 설득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법원이 화의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기업들을 대해 직권으로 회계법인을 검사인으로 선정, 회계감사를 시킨데 이어 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시 직권으로 화의취소를 결정하는 `결단'을 보여줌으로써 화의인가가 더 이상 `망할 기업'의 보루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부도 기업이 화의인가결정을 받아 내려면 우선 채권자집회에 제시된 채무변제조건 등에 대해 채권자 75%의 동의를 얻어내야 하고 이 경우 법원은 경영권을 기업주에게 존치시킨채 화의인가결정을 내리게 된다.
채권자(은행)들은 이미 발생한 채무에 대한 이자율이나 장래 발생할 이자율 등을 대폭 낮춰야 하는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화의취소 결정을 받은 기업들은 화의 인가 조건 이행은 커녕 매년 적자 규모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등 회생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법원은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국민의 재산인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천문학적으로 키워 결국에는 `망할 기업'을 비호해줬다는 비난을 살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유통업체로 손꼽혔던 ㈜미화당의 경우 화의조건 이행률(변제계획 548억원, 이행 141억원)이 25.84%에 불과했고 영업이익도 매년 23억∼32억원씩 적자를 냈다.
또 부산의 대표적인 건설업체였던 자유건설㈜도 화의인가 이행률이 35.97%(변제계획 460억원, 이행 165억원)에 그친데다 적자 누적이 심해 회계감사 보고서상 화의인가가 끝나는 2006년말의 부족자금이 무려 1천55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화의취소라는 처방을 받았다.
자유건설은 특히 지난해 4월 서류상으로 회사를 분할해 신설한 자유종합건설㈜(자유건설이 100% 지분 보유) 명의로 공사입찰에 참가하고 있지만 법원은 신규 수주실적이 전혀 없고 심각한 자금난 등을 이유로 사업수행이 불가능한 업체로 평가했다.
이밖에 피혁.의류생산업체인 ㈜삼산도 화의조건 이행률이 24%(변제계획 435억원,이행 105억원)에 불과하고 채무자 영업장소(서울사무소)의 대지와 건물마저 경락된데다 총자산 647억원에 총부채 규모가 1천760억원에 달하는 등 화의기간이 끝나는 2008년말 부족자금이 무려 2천31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화의취소 대상에 포함될수 밖에 없었다.
화의 취소가 결정된 기업들은 2주 이내에 상급법원(고법)에 항고할 수 있고 대법원까지 재항고 할 수 있지만 만약 항고 등을 포기하거나 항고.재항고가 기각되더라도 법적으로는 부도 직후 상태로 되돌려져 법정관리신청을 다시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채무 변제를 이행할 수 있는 특단의 상황을 이끌어 내지 않는 한 법원이화의취소 결정을 내린 기업에 대해 다시 법정관리 인가를 해 줄리는 만무하다.
따라서 화의 취소 결정을 받은 기업들은 법원이 파산관재인을 선정, 소위 `빚잔치'를 벌이는 파산절차 이행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법 제12민사부(법정관리전담 재판부) 김종대(金鍾大) 수석 부장판사는 "일부 업체의 경우 화의조건을 임의로 변경까지 하는 등 `도덕적 해이' 현상마저 보였으며 이대로 두다가는 그 폐해가 수많은 사람(채권자)에게 돌아갈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했기때문에 환부를 조기에 도려낸다는 차원에서 화의 취소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회사 회생을 위한 의지와 조치가 약한 다른 화의인가 업체에 대해서도 직권 발동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판부의 의지가 이처럼 확고한 만큼 나머지 화의 인가 업체들도 획기적인 회생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화의 취소라는 법원의 최후 심판 대상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것으로 보인다.
(부산=연합뉴스) 심수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