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3월 24일] 美 건보개혁, 상식의 승리

팔목 골절로 최근 병원 찾았던 재미 주재원 K씨는 치료한 지 2주일 뒤 600달러의 의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해당 병원은 자신의 보험을 받았음에도 치료 의사 중 한 명이 K씨의 보험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K씨는 그제서야 자신을 주로 치료하던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잠시 다녀가 몇 가지를 물어봤던 것을 생각해냈다. "의사 선생님, 내 보험을 받나요?" 미국 건강보험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동포와 주재원들이 병원에 입원하면 의사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질문이다. 같은 병원이라도 의사가 소속한 의료조합이 다르면 적용 보험이 달라진다. 의사 간 협진을 하는 경우 이런 난감한 일이 가끔 생긴다.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몸 걱정에 앞서 보험 걱정, 돈 걱정부터 해야 한다. 보험 없이 병원에 찾아가면 수납 직원은 환자 옷 차림새를 다시 한번 쳐다보는 게 미국의 의료현실이다. 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치료하다 개인 파산하는 기막힌 현실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다. 미국 중산층이 부담해야 하는 월 보험료는 소득의 20%에 육박한다. 그래서 미국 인구의 15%가량은 의료보험이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을 건 건강보험 개혁이 지난 21일 밤 의회의 법안 통과로 본 궤도에 올라서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 통과 직후 "미국인의 승리이자 상식의 승리"라며 건보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건보 개혁 추진을 두고 사회주의자로 공격하는 공화당과 보수층의 반대 논리를 의식한 발언으로 짐작된다. 물론 무리수는 있었다. 다수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여 공화당에서 단 한 표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 당선 후 약속한 통합의 정치와는 멀어 금융ㆍ교육ㆍ이민 개혁과 기후변화 등 다음 개혁 과제 추진에 공화당의 협력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이번 개혁의 성패를 판단하기 아직 이르다. 정부주도의 '퍼블릭 옵션(public option)'이 제외돼 반쪽 개혁이라는 지적 또한 없지 않다. 이에 따라 보수층은 물론이고 일부 진보층의 지지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첫발은 내디뎠다. 미흡한 부분은 수정안으로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시작조차 못하면 국민 건강이 보험사의 이윤추구에 볼모로 잡히는 비상식이 반복될 것이다. 상식이 승리하는 데 근 100년이 걸렸다. 오는 2019년 개혁 목표연도에 비보험자의 설움이 옛날 이야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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