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30이 넘도록 단 한번도 집 밖에 나가보지 못했다” “장애인은 생명보험도 여행보험도 가입하지 못한다” “병원 측의 거부로 임신에서 출산까지 일곱 차례 병원을 옮겨 다녀야 했다” “성추행을 한 상사는 그 자리에 남아 승승장구하는데 피해 여성은 직장을 떠나야 한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개최된 ‘장애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외치다’라는 토론회에서 절규처럼 쏟아져나온 얘기의 일부다.
전국에서 휠체어를 밀고 목발을 짚고 기차로 버스로 비행기로 장애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국회라는 장에서 장애 여성의 문제를 복지차원이 아닌 여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만도 감격해 하면서 몰려온 400여명이 의원회관 소회의실을 가득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불편한 사람들이 계단에까지 앉아야 했다.
격려차 행사장을 찾아준 동료 의원들께 자리조차 못 내드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각 장애인인 정화원 의원도 방문했지만 선 채로 인사하고 돌아갈 정도였다.
참석자들은 장애 당사자가 아니고는 인지할 수 없는 경험들을 폭발적으로 쏟아냈다. 특히 장애 여성들이 겪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장벽이 생생하게 소개됐다. 그들은 ‘장애인의 몸으로 어떻게 출산을 할까’ ‘나의 소아마비가 유전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막연한 편견과 우려를 겨우 극복하는 순간부터 철저히 비장애 여성 위주의 ‘산부인과 진료체계’를 경험하게 된다.
‘장애 여성들에게는 너무 높거나 아예 이용 불가한 진료침대와 각종 진단시설’ ‘청각 장애만을 가진 여성에게도 무조건 제왕절개를 강요하는 의료진’ ‘장애 여성의 출산을 기피해 의료 자체를 거부하는 의료진’등 장애 여성의 임신ㆍ출산 과정은 그 자체가 전쟁이다.
장애 여성은 단지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장애 출현율은 각국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요인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89.4%에 달한다고 한다. 장애인이 가진 장애를 문제 삼는 것은 ‘의료적 관점’에 국한돼야 한다. 사회의 성원으로서 장애인이 겪고 있는 차별문제의 본질은 그들의 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진입을 거론하는 오늘날까지도 장애 유형에 따른 사회적 지원체계를 강구하지 못한 우리 국가서비스의 병약한 구조가 이 순간에도 장애인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