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2월 21일] 착한 예술이 만드는 사회

"가난과 관련해 가장 참담하고 비극적인 일은 일용할 양식이나 거처할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 아무 것도 안될 거라는 느낌, 존재감의 부재, 공적인 존중의 부재야말로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육성재단인 '엘 시스테마(El Sistema)' 의 창설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지난 2009년 2월 TED가 주는 'TED 프라이즈'를 수상한 뒤 인터뷰에서 테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가난과 마약ㆍ폭력으로 얼룩진 빈민층 청소년들의 손에 악기를 들려주고 클래식 음악 교육을 시킴으로써 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준 아브레우 박사는 올 들어 국내에서도 주목받았다. '엘 시스테마'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내에 개봉했고 제10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10월 한국에도 다녀갔다. 그가 주목받게 된 것은 우리나라도 그만큼 문화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기도 하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문화가 국민의 의식수준을 만들고 그것이 곧 국가 브랜드가 되는 만큼 국가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앞장서 문화격차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 양극화 못지않게 문화 격차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한국문화경제학회가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내용에 따르면 국민 대부분이 문화예술활동 기회의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서우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문화격차는 단순히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경쟁과 창조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도태될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누구나 쉽게 문화 감수성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가ㆍ사회적인 차원에서 문화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앞장서서 문화를 발전시킨 좋은 사례가 프랑스다. 국가의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실천에 옮긴 최초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창작, 지역문화의 활성화, 문화산업과 문화 복지 등의 분야에 문화ㆍ정치적 인식을 갖고 정책을 추진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조르주 뒤비는 "프랑스를 위대한 문화의 나라로 만든 것은 강력한 군주국가 덕"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최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도 문화 복지에 무게중심을 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문화부는 내년도에 문화 바우처 예산을 올해보다 5배 이상, 복지 카드 수혜 대상자도 4.5배 늘려 소외 계층에 대한 문화ㆍ관광ㆍ체육 복지혜택을 늘리겠다는 사업계획을 밝혔다. 중앙 정부뿐 아니라 서울 구로구의 '우리 동네 오케스트라', 세종문화회관의 '세종 꿈나무 하모니 오케스트라', 서울문화재단의 '예술로 희망 드림 프로젝트' 등 저소득층을 위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다시 엘 시스테마 얘기로 돌아가면 1975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 현재 37만명 이상의 베네수엘라 청소년과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음악교사만 6,000명에 이르며 전세계 수십개국으로 확산됐다. 지난 35년 동안 베네수엘라에서 엘 시스테마의 혜택을 입었던 사람들은 악기와 음악을 통해 스스로가 무엇인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공적인 존재로서 자존감을 갖게 되고 그런 느낌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상임 지휘자에 오른 구스타보 두다멜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엘 시스테마가 내게 악기를 주었을 때다. 내 삶에 무엇인가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 구성원 가운데 자신이 소외됐다고 느끼는 불만 계층이 많아질 때, 자신의 삶이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계층이 많아질 때 결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주변의 소외계층을 돌아보는 '착한' 예술이 퍼져나가 국민의 문화의식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국가도 국민도 '착해질' 수 있음을 엘 시스테마의 사례가 입증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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