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양손잡이의 세계입니다. 문학에 진보나 보수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작가는 부족의 주술사처럼 열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닙니다. 단지 자유롭고 싶습니다. 또 중도를 기회주의라고 하면 안됩니다. 오른손과 왼손 모두 결국 심장에 속해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오른손과 왼손을 심장이 모두 포용하듯 문학도 그러합니다" 작가 황석영(66) 이 최근 인터파크가 주최한 지리산 둘레길 걷기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명박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동행후 진보진영으로부터 '변절했다'는 비난이 일자 한 동안 언론을 기피했던 그는 이 같은 논리로 그 간의 침묵을 벌충했다. -황선생님의 행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본인 스스로는 그 같은 행보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작가는 예술가와 지식인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직업윤리를 죽을 때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와 상관없다고 방관할 순 없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젊었을 때와 나이든 지금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용산참사가 났다고 해서 그 앞에서 난리를 칠 순 없다고 봅니다. 다른 방향과 다른 방식으로 주변 상황에 변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타협하기도 하고, 구스르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황선생님의 이 같은 정치적 행보가 노벨상 때문이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문단에서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웃기는 얘깁니다. 우리 문단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한 분은 작고하신 분들까지 10여명이 넘습니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문학이 훨씬 낫습니다. 일본의 문학 수준은 형편 없다고 생각합니다. 편하게 살아서 그렇지요. 원래 부잣집 애들이 별 사연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린 국민은 하도 험하게 살아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서사가 대단합니다. 마치 아일랜드 문학이 갖고 있는 그것과 비슷하지요. 하지만 한국어 번역이 원활치 못하고 노벨상이 서구중심이라 수상이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너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장하시는 '알타이(동북아)문화연대'를 통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선은 분단을 극복하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강력한 패권 국가들 사이에서 자기 실력을 키우고 자신만의 카드를 갖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알타이계 문화 연대로 충분히 가능하도록 할 자신이 있습니다. 올해 열리는 '알타인 문화 포럼'에는 몽골ㆍ우즈베키스탄ㆍ카자흐스탄ㆍ키르기스스탄ㆍ타지키스탄 등 5개국이 참여하지만 내년에는 북한도 참여하는 등 구체적으로 가시화 될 예정입니다. 나아가 경제적 협력도 이룰 것이고요. 알타이계를 잇는 '동북아문화연대'를 만드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2008년 '개밥바라기별'에 이어 '강남몽(夢)'을 인터넷에 연재 중이십니다. 인터넷 연재를 해 보니 어떠십니까? ▲ 인터넷 연재로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 또 이후에 책이 출간되는 것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디지로그(digilogue)'라고 표현합니다. 굉장히 좋은 밀월관계라고 생각하죠. 요즘 '강남몽'을 쓰면서 자료들을 찾으면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느낍니다. 새로운 자료들이 너무 많더군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현재 인터파크에 연재중인 '강남몽' 은 평일에는 150명 정도, 주말에는 200-300명의 독자들이 꾸준히 댓글을 답니다. 그래서 이젠 아이디만 봐도 '아 그사람' 하고 알 수가 있습니다. 댓글을 보니 내 글을 읽는 독자들 일상의 결이 보입니다.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이 재밌습니다. 가끔 독자들이 내 소설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앞으로 연재 방향을 논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초치지 말라'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탈고할 때까지 독자들 반응을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젠 독자들 반응을 즉시 알 수 있죠.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글을 쓸, 이런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인터넷 연재 때문에 문체도 간결하게 변화가 왔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저는 원래 대중성과 문학성을 놓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중소설을 쓰려고 하지 않아도 책을 내면 70만~80만부가 팔리지 않습니까. '개밥바라기별' 연재때는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 라고 부르는 사람부터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다양하게 있었죠. 원래 단순하고 단조로울 정도로 쉬운 문장을 쓰려고 하는데 그런 점이 인터넷에서 좋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황석영 문학 50년입니다.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똥 누러 갔다 왔더니 인생이 가버렸습니다. 이제 글을 쓸 때 딱히 취재를 하지 않고 쓸 정도가 됐습니다. TV에서 보면 한 가지 일을 10몇 년만 해도 생활의 달인이라고 불러주던데… 어떤 일을 50년 했다고 하면 그건 정말 달인 아닙니까. 전 그 동안 겪은 게 너무 많아서 이젠 어떤 이야기를 하면 대충 감이 다 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또 저는 청년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년간 글을 안쓰다 98년에 다시 시작했으니까요. 작년에 TV 오락프로그램에 나갔더니 "나는 황석영이가 죽었는 줄 알았다"고 말하더군요. 워낙 오랜만에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예전엔 황석영 하면 '조국'과 '민족'. 심지어는 '빨갱이'라고 했는데 TV출연 이후 독자들에게 친근해진 것 같습니다. 이젠 동네 아저씨처럼 생각하는 듯합니다. -평소 산행이나 산책을 즐기십니까. 글을 어떻게 구상하는 지 궁금합니다. ▲황석영은 맨날 뭔가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글은 언제 쓰냐는 말들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땐 하루 10시간 넘게 며칠씩 앉아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가한테 산책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사색에 잠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주로 집 주위의 호수공원이나 산에서 가벼운 산행이나 산책을 합니다. 낮에는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로 심야에 많이 돌아다니지요. 오늘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니 이곳에는 전통 마을이 다 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요즘 새로운 길에 대해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게 옛날 취락의 그리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늘 독자들과 길을 걸어보니 다들 너무 급하게 걷던데 원래 길이라는 건 한둘이서 유유자적하며 가는 것입니다. 과거 대동여지도를 보고 오늘날 지도를 보면 국토의 변화가 심하지 않습니까? 대동여지도는 사람이 걷는 길을 중심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걷는 길이 나타난 것인데 지금은 그런 길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길을 인생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에 가깝습니까? ▲제 인생이요? 롤러코스터지요. 온갖 일을 다 겪었습니다. 한국은 억압이 너무 심해서 나중에는 파리에 살고 싶습니다.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중 파리가 가장 좋더라고요. 길이란 게 재밌는 건 이게 미완의 모습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길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끝나는 길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길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악력 ▲1943년 만주 ▲1962년 경복고등학교 재학 중 '사상계'에 '입석부근'으로 등단 ▲1966~1967년 베트남전쟁 참전 ▲1972년 동국대 철학과 졸업 ▲1974년 7월 한국일보에 '장길산' 연재 시작 ▲1984년 민중문화운동연합 활동 ▲1988년 민족문화작가회의 이사 ▲1988년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1989년 방북 이후 1991년까지 독일 베를린에 체류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 선고 ▲1998년 석방 ▲1999년 영화사 '미르' 대표 ▲2000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출간 ▲2002년 한국일보에 '심청, 연꽃의 길' 연재 시작 ▲2004년 제8회 만해대상 수상 ▲2008년 '개밥바라기별' 인터넷 연재 및 출간 ▲2009년 5월 이명박 대통령과 중앙아시아 순방 ▲현 알타이문화녹색연대 준비위원회 위원장
"MB정부는 중도실용" 언급… 변절 논란 휩싸이기도 ■ 황석영은…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황석영 작가가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하던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의 제목이다. 그는 소설 쓰기에 대해 설명한 이 글에서 누군가'글을 어떻게 쓰는가'라고 질문하면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고 말한다"며 "노동이 글쓰기의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황 작가가 글쓰기를 시작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그는 그동안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등 한국 문단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발표해 '민족작가'로 불렸다. 또 지난 1989년 방북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7년 동안 징역을 사는 등 진보진영의 대표주자로 평가되기도 했다. 1998년 석방된 후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2008년에 인터넷에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해 누적 방문자 200만명을 돌파하며 인터넷 연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 5월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해 현 정부를 '중도실용'으로 평가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언급해 '변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알타이계 문화연대를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9일 알타이문화녹색연대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지속 가능 녹색성장을 위한 중앙아시아와의 협력방안 모색'을 주제로 '알타이 문화 2009 포럼'을 개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