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투자자 보호" 칼뺐다

■ '검은머리 외국인' 엄단서울지검 형사 9부가 지난 99년 코스닥 등록기업이 발행한 해외전환사채(CB)를 문제삼아 관련자를 구속한 것은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활개를 쳐온 거짓 해외CB 발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수사에서 중앙종금이 골드뱅크 해외CB 발행을 통해 불법적으로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드러나 그동안 국내 기업이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해외CB를 발행한 후 외자유치를 재료로 주가를 부양시키고 이에 따른 시세차익을 얻고 있다는 증권가의 소문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지난해 국감에서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은 금융감독원 자료를 인용, 99년부터 3년간 발행된 해외CB 중 25%(8억1,380만달러)가 국내자금이 개입된 편법 자금조달이었다고 밝히면서 해외CB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이용한 가짜 외자유치의 문제점을 지적한바 있다. ◇해외 CBㆍBW 사기 왜 성행하나 CB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원금과 이자를 갚도록 요구할 수 있는 주식연계 채권이며 BW는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신주를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채권이다. CB는 주식으로 전환하면 채권이 소멸되지만 BW는 채권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게 다른 점이다. 상장ㆍ등록기업들이 해외CB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CB를 발행할 경우 기업실적과 공모 목적 등 세세한 내용을 담은 유가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CB는 그럴 필요가 없다. 쉽게 말해 법의 감시망에서 빠져나가기 쉽다는 것이다. 또 이번 검찰 수사에서 지적됐듯이 해외CB 발행은 곧 외국의 투자가들이 채권 인수에 나설 정도로 '우량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주식시장에서 과시할 수 있어 주가 상승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 외자유치 어떻게 이뤄지나 해외증권을 발행하는 기업은 우선 주간 발행사를 선정한다. 주간사는 발행과 관련된 업무와 인수자의 물색까지 책임지는 게 통례다. 이번 사건처럼 중앙종금이 골드뱅크의 해외CB 인수자까지를 모두 선정한다는 얘기다. 일단 인수자만 정해지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주간사는 국제채권결제기구인 유로클리어에 해외증권을 예탁하고 인수자들은 유로클리어의 발행기업 계좌에 돈을 넣고 거래를 마무리한다. 거래가 끝나면 중간에 페이퍼 컴퍼니를 끼워 해외에서 발행된 주식을 인수하도록 한 뒤 국내 매입자들이 이들로부터 해외증권을 사는 형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인 수법이다. 또 해외증권을 인수한 일부 국내기관은 이를 다시 일반 투자자에게 파는 일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골드뱅크가 발행한 제22회 해외CB가 주식으로 전환되자 총 335만주 중 중앙종금이 286만주를 사들이고 나머지 46만주는 시장에 내다팔아 96억원의 현금 수입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CBㆍBW 이용한 허위 외자유치, 코스닥에 많아 거래소기업은 전체 자금조달에서 해외CB와 BW가 차지하는 비중이 99년 7%, 2000년 1.3%, 2001년 상반기 1.2%로 줄어들고 있다. 반면 코스닥기업은 정부의 벤처육성정책과 외자유치 활성화 명분을 등에 업고 발행비중이 99년 6.7%, 2000년 12.3%로 늘어나더니 2001년 상반기에는 1조8,327억원으로 전체 자금조달의 32%로 비중이 급증했다. 최근 들어 거래소기업보다 코스닥기업의 편법 해외증권 발행이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스닥기업은 숫자를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유로 공모시장에서 외자를 유치했다고 공시하고 있지만 이중 70% 이상은 국내자금이 해외자금으로 둔갑한 경우라는 게 증권업계의 지적이다. 중앙종금의 골드뱅크 해외CB 발행처럼 해외CB나 BW를 이용한 거짓 외자유치는 99년부터 자행됐으나 그동안 감독당국은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며 무대책으로 일관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에 중앙종금의 골드뱅크 해외CB 발행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죄'를 적용한 것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해외CB를 발행한 상장ㆍ등록업체 및 주간사에 대한 수사 확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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