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5년간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가 부익부 빈익빈이다. 우리 정부는 재벌을 파트너로 한 불균형 성장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중산층의 재산형성에 상당한 관심을 두어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전까지는 개발도상국가로는 드물게 중산층이 70%를 넘는 항아리형 사회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94년 70.2%였던 중산층(평균소득의 50~150%) 가구는 2001년 65.3%로 낮아졌다. 반면 평균소득의 50% 미만을 의미하는 빈곤층은 8.8%에서 12%로 증가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역시 97년 0.28에서 99년 0.32로 상승했고 2002년에도 여전히 0.31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지니계수는 보통 0.3 이하이면 소득분배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0.4 이상이면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의 소득분배는 80년대 초반부터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힘입어 꾸준히 개선됐지만 외환위기 후 악화됐고 이제는 불균형이 심화되는 추세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왜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일반화되고 심화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의 미시적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지만 네트워크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개인역량의 차이나 사회적 제도의 모순 때문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조직적인 특성으로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경제생활의 근본법칙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공학도 출신의 경제학자였던 빌프레도 파레토(V. Pareto)는 19세기 말에 부의 보편적인 분배법칙을 제시했다. 재산의 크기가 두배로 늘어날 때마다 그만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일정한 상수의 비율로 감소하는 역함수의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소위 20-80법칙이라고 불리는 수학적 분포에 따라 언제나 전체 중 소수의 비율이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역사적인 우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집합적인 네트워크에서는 질서가 생긴다는 것이 네트워크학자들의 주장이다. 파레토 법칙은 문화나 행동, 또는 지능을 비롯한 개인적인 특징과는 상관없이 보다 심원한 조직원리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부는 언제나 소수가 소유했다.
경제활동에 의한 부의 변동은 거래와 투자를 통해 일어난다. 최근 파리대학의 물리학자 부쇼와 메자르는 부유한 사람이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성향을 추가로 반영한 모델을 만들어 1,000명의 네트워크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거래와 투자수익의 비중을 다양하게 조정해도 소득분배의 기본 형태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부를 임의로 분배한 다음 경제모델을 장기간 가동시켜도 언제나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수학적 분포가 파레토 법칙 그대로 실제 세계의 데이터와 완벽하게 부응하는 모습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목격되는 분배의 불평등이 돈을 버는 재능과는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시사하는 결과다. 거래는 부를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는 경향이 있지만 투자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그래서 강제된 거래인 세금은 빈부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도 부의 재분배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호화사치품에 대한 과중한 세금은 오히려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 하나의 발견은 투자의 불규칙성(시장의 신뢰성)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거래에 의한 부의 자연스러운 확산을 완전히 압도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럴 경우 부의 편재가 사람들 사이의 자금 흐름에 의해 적절히 완화되지 못할 만큼 빈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네트워크의 성장과정에서는 얼마 동안은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그 결과 허브가 생겨난다. 그러다 연결성이 가장 높은 허브가 새로운 고리를 연결하는 데 있어 차지했던 우위를 상실하기 시작하면 연결고리가 적은 요소들이 간격을 좁혀오고 각각의 요소들이 대강 비슷한 개수의 고리를 지님으로써 네트워크는 평등주의에 가까운 색채를 띠게 된다.
규모의 불경제가 작용하는 분야에는 진입규제의 완화를 통해,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는 공정한 과세와 기부문화의 확산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촉진한다면 우리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은 다소나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섭(이화여대 경영부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