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들] 박성철 신원그룹회장

"개성공단, 북미관계 개선땐 세계최대 될것"<br>노동의 질등 높아 개성공장 3배로 키울 계획<br>中저임금 메리트 줄어 설비 80% 옮겨갈것<br>세계무대서 통할 명품 브랜드도 곧 론칭


제2차 남북정상회담(지난 10월3일) 이후 만 3개월가량이 흐른 현재 대북경제협력사업에 대한 가능성이 한층 높아져 있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특히 북한과 미국 간 관계개선을 위한 양측의 접근 노력이 두드러지게 표출되면서 경제적 활용가치라는 차원에서 대북사업을 현실적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은 남측과 북측ㆍ미국ㆍ중국 등 주변국의 정치ㆍ경제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대표적인 접점. 새 정부가 들어오는 내년에는 개성공단을 필두로 대북 경제협력이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개성공단 입주업체 대표인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은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개성공단은 세계 최대 공단이 될 것”이라며 자신했다. 한해를 마무리하기 바쁜 세밑에 신원그룹의 마포사옥에서 박 회장을 만나보았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지요. 기대만큼이나 낙담스러운 상황도 많았을 것 같은데 현재까지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큽니다. 북측 근로자의 태도나 자세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문화가 달라 서로 오해했던 것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서로 간에 아껴줄 수 있는 인간관계가 돼가고 있습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점이 무형의 이질감을 씻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특히 교육 문제는 정말 잘 해결됐어요. 말이 통하니까 기술이전이 잘된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북측 근로자들의 마인드가 남쪽 사람들과 많이 달라서 일이 꼬이는 경우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의외로 함께 일하기가 쉬웠어요. 북측은 질서가 엄한 사회라서 그런지 윗사람들에게만 지침을 주면 그 아래에서는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북측 직장장과 부직장장의 관리능력이 뛰어나 일을 진행하기가 수월합니다. 덧붙이자면 개성공단사업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어딥니까. 우리 기업들이 북측 근로자를 직접 선발하겠다고 주장하기는 일러요. 그렇다면 그쪽 근로자들도 자기가 일하고 싶은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줘야 서로 공평한 것 아니겠습니까. -상당히 낙관적으로 바라보시는군요.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행ㆍ통신ㆍ통관, 즉 삼통 문제 등에서 달라진 게 있습니까. ▦정상회담 이후 총리급 회담도 잘돼 분위기가 좋아지고 삼통도 곧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통관과 통행을 번번이 3일 전에 신청해야 했던 점 등은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대처요령이 있습니다. 신청을 매일 하는 거죠. 일단 신청해놓고 못 가는 날에는 취소를 하면 되거든요. 그런 것들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관건은 북핵이지요. 남북경협의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가 선결돼야 합니다. 그래야 북미관계가 개선됩니다. 그러면 개성공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역외가공지역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대미 수출이 인정되면 개성은 세계 최대의 공단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계 최대 공단이 될 것이라는 표현이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만. ▦설명해드릴게요. 요즘 한국 사업체가 세계 5대양6대주에 안 들어간 곳이 있습니까. 임금 수준이 낮은 개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일본에도 한국 기업의 생산시설이 들어가 있어요. 이처럼 기업들이 해외로 나간 것은 모두 생존 차원에서 선택한 것이라고 봅니다. 각자 사업하기 알맞은 환경이 형성된 나라가 있다면 나가는 게 맞습니다. 개성도 마찬가지에요. 게다가 말 잘 통하지, 노동의 질 높지, 그래서 기술이전이 굉장히 빠릅니다. 거리도 한시간 남짓이라 국내에서 움직이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물류비 걱정이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여건이 어디 있습니까. 한미 FTA로 미국의 주문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일거리가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그러면 세계로 나간 한국 기업들이 다 개성으로 오게 될 겁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하지만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 임금도 빠르게 상승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메리트가 줄어든다는 이야긴데요. ▦맞기는 맞는데…(이 질문에 대해 박 회장은 잠시 심사숙고하는 모습이었다.) 1년에 10%씩 임금을 올려주기로 약정이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오른다고 해도 물류비와 교육비 절약 효과가 임금 인상폭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현재 신원은 개성에서 월평균 5만점의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데 내수용 제품 중 지난 2005년 5%, 2006년 8%, 지난해에는 20%가 개성공단에서 만든 것들입니다. 개성산 제품은 품질도 좋아요. 조만간 국내 생산품 품질에 대비해 100% 수준까지 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박 회장께서는 남북경협의 큰 문제들이 해결되면 해외 생산기지를 개성으로 옮기실 의향도 있습니까. ▦물론이죠. 그렇지 않아도 개성 공장을 3배 규모로 증설할 계획입니다. 이달 안에 착공해서 빠르면 7~8개월 내에 완공이 가능합니다. 완공되면 중국에 있는 생산시설의 70~80%를 옮길 생각입니다. 중국도 각종 법률이 개정되고 시장에 변화가 와서 앞으로는 저임금 혜택만을 노리는 외국 기업은 활동을 못하게 됐습니다. 중국의 단순 노임시장은 계속해서 위축되고 있어요. 이런 상황들을 대비해서 개성 공장을 대폭 늘리는 겁니다. 다만 해외에 이미 나가 있는 공장들은 현지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모두를 개성으로 U턴시킬 수는 없지요. -바쁜 시기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패션산업이 고부가가치 사업이지만 자칫 외화내빈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한국도 세계무대에 통할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텐데요.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이 바로 제가 드리려던 말씀입니다. 지금 구상하고 있어요. 우리가 30년 넘게 섬유를 했는데 이제는 세계적인 브랜드 한 번 만들어봐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크지요. 명품은 좋은 원부자재, 좋은 디자인, 좋은 생산 등 세 가지로 결정됩니다. 좋은 원부자재를 쓰는 것은 쉽습니다. 디자인의 경우 한국 디자이너들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부족하면 외국의 유명 디자이너를 데려오면 됩니다. 그 이후에는 가장 좋은 생산이 필요한데 신원은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성 공장이 바로 가장 좋은 생산지입니다. 노동의 질이 남쪽보다 좋으면 좋았지 절대 밀리지 않습니다. 늘 생산이 문제였는데 그것을 해결했으니까 우리도 세계에 통할 상품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그간의 준비를 바탕으로 곧 명품 브랜드를 론칭하겠습니다. ● 워크아웃 졸업 4년만에 부채 1兆 청산
"힘들어도 품질경영 고수" 브랜드파워 끝까지 지켜내
신원은 지난 2003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뒤 불과 4년 만인 올해 1조원의 부채를 모두 갚았다. 경영실적만으로도 대단히 주목받을 만한 움직임이었다. 박성철 회장은 어떤 요술을 부린 것일까. “팔아서 갚고, 벌어서 갚은 것이지요. 골프장을 비롯해 건설ㆍ전자ㆍ전기 부문 등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서 정리하고 직원들이 열심히 해줘서 번 돈으로 빚부터 갚았습니다. 다 직원들이 열심히 해준 데 대한 보람입니다.” 그가 밝힌 노하우는 새삼스럽지 않았다. 분명 신원만의 비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있겠습니까. 당시 44개 채권단이 저를 끝까지 믿어줬습니다. 고객과 직원도 저와 신원을 믿어줬습니다. 시련은 작은 상처와 큰 교훈을 남겼을 뿐, 신원은 이 믿음을 바탕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1조원이 넘었던 부채를 다 갚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섬유업은 곳곳에 아낄 곳도 있는 반면 까딱 잘못하면 손해볼 부분도 많아요. 원단ㆍ원사ㆍ염색ㆍ가공ㆍ봉제에서 손실을 줄여 제로 수준으로 줄이고 하자율을 낮췄습니다. 그러면서 생산력이 강화됐습니다.” 겨우겨우 얻어낸 비밀의 한자락은 ‘힘들어도 품질 경영’이라는 것. 기자 개인의 시각으로는 워크아웃이란 홍역을 치른 신원의 브랜드(베스티벨리ㆍ씨ㆍ지이크 등) 관리능력에 대한 노력과 성과가 눈길을 끌었다. “잘 보셨습니다. 회사가 어려워도 브랜드가 상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채시라ㆍ최진실ㆍ심은하ㆍ이영애ㆍ김희선ㆍ송혜교ㆍ전지현ㆍ한예슬 등 당대의 톱 클래스 모델을 기용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직원들과 하나로 움직여 브랜드 가치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박 회장이 브랜드 관리에 공격적인 전략을 선택한 것이 오히려 힘든 시기에도 직원들의 프라이드를 유지시킨 동력으로 작용한 듯하다. 애써 가꾼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려는 욕심도 부릴 만하다. “이제 부채를 청산했으니까 앞으로는 기회가 있으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다시는 금융권에 의지하고 싶지 않아요. 템포가 늦어지더라도 벌어서 모은 돈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어떤 업종을 선택할지는 계속 두고 보겠습니다.” 고난을 겪은 경험 때문인지 박 회장은 앞으로 매사 행보에 좀더 신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섬유산업에 대한 확신이 남달랐다 "섬유가 사양산업이라는 말은 수긍할 수 없어요. 품질ㆍ기능성ㆍ디자인을 차별화시키면 수출 효자 종목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섬유산업의 가능성을 얼마나 확신하는가 싶어 박성철 회장에게 '중국 등에 밀리는 것이 대세가 아니냐'는 질문을 했더니 나온 대답이다. "제가 섬유산업에 33년간 종사했고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을 6년간 하면서 업계 전체를 볼 기회도 있었습니다. 어려움을 맞아 망한 사람과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을 비교해봤더니 결론은 변화에 대한 대응의 차이였습니다." 이어지는 박 회장의 말은 '남들과 다르게 사업하라'는 것. "사실 국내 생산시장은 이미 20년 전에 무너져버렸습니다. 신원도 바로 그때 중남미에 생산기지를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는 중남미의 임금도 올라가서 중국ㆍ동남아로 가게 된 겁니다. 기업은 늘 높고 낮은 곳을 동시에 보고 있어야 합니다." 박 회장은 앞으로 한국 섬유업은 기술, 디자인, 글로벌 마케팅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아울러 아프리카ㆍ러시아 등 신시장을 개척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범용제품의 생산은 임금이 낮은 곳으로 이전하고 국내에서는 차별화된 고부가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섬유산업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수출 효자 산업으로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습니다." 지구촌 전역에 생산 및 판매기지를 갖춘 신원그룹을 관리하려면 막강한 체력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몸에 맞는 운동이 가장 좋은 운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게는 30년 이상 꾸준하게 하고 있는 저녁 산책이 건강 관리를 위한 가장 큰 운동입니다. 매일 오전3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가는 길에도 걸으며 운동합니다. 주말에는 골프도 즐깁니다." 신앙심이 남다른 박 회장은 짬짬이 보는 책도 '성경'이라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을 들춰봅니다. 주로 출장 중에 많이 보게 되는데 성경 외에는 기독교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습니다." 굳이 성경을 제외한 책을 추천한다면 '람세스'를 꼽고 싶다고 말했다. ◇박성철 회장 프로필 ▦1940년 전남 신안 출생 ▦목포고, 한양대 행정학과 졸업(전남대 명예박사) ▦1970년 산업경제신문 논설위원 ▦1973년~현재 신원 대표이사 ▦1981년~현재 한국무역협회 이사 ▦1994년~현재 극동방송 이사 ▦1994년~현재 국민일보 이사 ▦1998~2004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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