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2일] 페레그린 파산

[오늘의 경제소사/1월12일] 페레그린 파산 권홍우 편집위원 엎친데 덮친 격. 1998년 1월 13일, 홍콩의 한국금융기관 데스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페레그린 증권이 도산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여서 충격의 강도는 더 했다. 더 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아시아 증시 전체가 폭락하고 유럽 주식시장도 흐느적 거렸다. 시장은 의외로 버텨냈다. '홍콩 최대의 투자금융회사'인 페레그린의 파산에도 시장은 원기를 되찾았다. 이틀 후부터 페레그린의 파장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속으로는 피해를 본 투자자가 많았지만. 페레그린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페레그린은 공격적 투자자였다. 한국처럼. 1988년 영국인 토트의 설립 이래 페레그린은 아시아 신흥시장을 찾아 움직였다. 한국에 동방페레그린증권사를 세우고 북한에 대성페레그린은행을 설립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미지의 황금을 취했던 업보 때문인지 시련이 닥쳐왔다. 인도네시아의 택시회사에 투자한 2억6,000만달러가 화근. 페레그린은 결국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페레그린이 망한지 8년. 평가는 제각각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쇠망했다'는 정답 뒤에 꼬리를 붙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2002년 홍콩법정은 조지 소로스와 아시아개발은행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페레그린을 속여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중국과 밀접한 관계인 페레그린을 견제하려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제는 프랑스 회사로 넘어간 페레그린의 흥망사를 80, 90년대 번창했던 아시아 자본의 축소판으로 본다면 무리일까. 일면 딱하기는 해도 페레그린은 아직까지 얄미운 존재로 남아 있다. 1997년 우리의 외환위기 직전, '지금 당장 한국을 탈출하다(Get out of Korea, Right now)'던 보고서의 제목이 지금도 생생하다. 제 앞가름이나 잘할 것이지…. 입력시간 : 2006/01/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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