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5일] 설탕법

‘세금 좀 내라-싫다’ ‘그럼 밀수라도 하지 마라-웬 간섭이냐’. 미국 독립에 깔린 경제적 배경이다. 영국과 미국 식민지간 이해다툼이 불거진 것은 1763년.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인 7년전쟁이 끝난 직후부터다. 승리했지만 1억3,000만파운드의 전쟁 채무를 안게 된 영국의 선택은 식민지 조세강화와 밀수통제. 1764년 4월5일 제정된 설탕법은 밀수를 억제하는 동시에 관세를 노린 다목적 카드였다. 식민지의 반응은 극력 반발. 조세부담률이 본토의 20분의1에 불과하다는 명분도 통하지 않았다. 설탕을 재료로 럼주를 만들던 양조업자들을 시작으로 조세저항에 나서 1765년 법을 폐지시켰다. 잇따라 나온 인지세법(Stamp Act)ㆍ타운젠트법 역시 같은 경로를 밟으며 없어졌다. 영국의 양보 이유는 관세 수입보다 식민지의 영국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인한 손해가 훨씬 컸기 때문. 승리를 맛본 미국 식민지는 코가 높아졌다. 마침 재정난에 봉착한 영국 동인도회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차를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한 차조례(Tea Actㆍ1773년)가 발표되자 위기에 몰린 미국 중간상과 밀수업자들이 영국 배를 습격, 342개의 차상자를 바다에 내던진 ‘보스턴 차 사건’도 ‘저항하면 통한다’는 습성에서 일어났다. 설탕법으로 시작된 영국과 식민지간 세금 공방전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고 미국은 독립을 따냈다. 조세저항으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세금에서 해방됐을까. 아니다. 건국 후 미국인들은 식민지 시절 모든 세금을 합친 것보다 10배가 넘는 세금을 물었다. 독립전쟁 참전용사들이 일으킨 세이즈의 폭동, 위스키 반란 등의 원인도 세금 때문이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로 포장된 미국 혁명의 실체가 여기에 숨어 있다-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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