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한 바이러스가 있었다. 독감보다 훨씬 무섭게 번져갔고 스스로가 그 병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소위 ‘공주병’ ‘왕자병’이라 불리던 병이다. 그런 기질이 있는 사람에게 주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학창시절 기본학습을 안 해서 걸린 병이라고 놀리고는 했다.
‘국어를 못해서 주제를 모르고 수학을 못해서 분수를 모른다’는 것이다. 적당한 자기 내세우기는 애교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병증(病症)이 지나쳐 주변 사람들을 하녀나 시종처럼 부리려 들면 ‘왕따’를 당한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폐해가 있는데 정부의 집단적 병증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정사업자율평가다.
정부는 부처 예산운용제도를 ‘톱 다운’ 제도로 자율권을 확대시키면서 재정사업성과에 대한 점검을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재정사업자율평가를 도입, 실시하고 있다. 원래 자기평가가 타인의 평가보다 후한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하지만 지난해 세금을 써서 진행해온 사업을 얼마나 잘했는지 부처가 스스로 평가한 것과 그것을 기획예산처에서 재평가한 차이를 보면 참여정부는 공정한 자기평가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부처 스스로가 평가한 전체 재정사업(583개 사업, 약 41조원) 평균 점수가 91.8점이었으나 예산처의 확인ㆍ점검 결과 66점으로 떨어졌다. ‘우등생’인줄 알았는데 ‘낙제생’인 것이다. 13개 사업은 평가주체에 따라 50점 이상의 뻥튀기가 있었다. 웃고 넘길 만한 애교라고 보기에는 집단적 착각이 심각한 수준이다.
어떤 사람, 어떤 집단이 성공하는가. 정확한 자기평가 후 그에 맞게 단계를 높여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해나갈 때 건전하게 발전하고 성공한다. 특히 국민 세금으로 재정사업을 하는 정부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기평가와 결과 제시를 통해서 수요자인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만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ㆍ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라. 채근담). 참여정부는 이 말의 뜻을 곱씹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