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투기자본 규제엔 공감 방어수단 놓고 이견

외자유치 걸림돌 우려등 상충되는 부분 많아 법안통과까진 진통 예상

여야 정치권이 기업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외국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위협론’에 폭넓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간판기업인 삼성전자나 SK㈜ 등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국제 금융자본의 경영권 침해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판단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다만 기업에 경영권 부담을 안겨주는 공정거래법 개정문제가 여야간 쟁점으로 남아 있는 현실에서 차등의결권ㆍ황금낙하산 등 선진국의 방어제도를 그대로 도입할 경우 외자유치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투기자본 규제에는 공감=정치권에서는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외자유치라는 명분 아래 적대적 M&A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지나치게 급격하게 제도를 바꿨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 기관들의 주식비중은 낮아지고 외국자본의 지분율이 높아져 급기야 주요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효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97년 이후 외자유치에 정책의 초점을 맞춘 나머지 국내 금융시장이 외국자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전체 상장주식 중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99년 말 18.5%에 불과하던 것이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43.7%로 높아졌다.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도 “외국인의 입김이 세지면서 경영권이 위협받고 투자여력이 감소하는 등 문제점을 낳고 있다”면서 “어떤 형태로든 경영권 방어장치를 마련해 폭 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기업들이 강경한 기업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정부에 맞서기보다 경영권 보호에 관심이 높은 의원들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우회전략을 택한 것도 일정 역할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애실 한나라당 의원은 “현재 특정 상장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10%를 넘는 외국인이 상당수 존재해 경영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기업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적대적 M&A 방어수단을 가장 유력한 것으로 꼽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어수단 놓고 의견 엇갈려=이처럼 경영권 방어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회 차원의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그러나 ▦경영권 방어에 집중할 경우 외자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점 ▦경영권 방어수단이 재벌의 족벌체제 구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구체적인 법안 마련과정에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상법 개정 등 현행법과 상충되는 규정이 많아 실제 법안 작성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정책위의장은 “경영권 보호가 시급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법안제출의 시기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며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적대적 M&A를 방어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도 “상법 개정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 실제 법안통과에는 진통이 예상된다”며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공정거래법 개정과정에서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의원은 “현행 상법이 변화하는 금융시장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상법까지 손을 대면 워낙 방대한 일이라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권 방어가 삼성 등 일부 재벌을 위한 정책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특히 경영권 보호정책이 창업자의 지배력만 강화시켜 경영의 투명성 제고란 출자총액제한 등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본래 취지와 상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은 “5%룰 강화 등 경영권 보호방안은 일부 외국 투자가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들이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의 경영권 보호장치=해외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의결권, 독약조항(Poison Pill),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 초다수결의제 등 다양한 M&A 방어수단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의 경우 대주주 등에게 1주당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현재 유럽기업의 20.1%가 채택하고 있으며 주주이익을 중시하는 미국기업도 11.5%가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포드나 영국의 브리티시에어웨이, 로열더치셸(네덜란드), 폴크스바겐(독일)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 안정을 이루고 있다. 대주주 등 기존 주주들에게 싼값으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독약조항의 경우 미국기업의 56%가 이를 통해 경영권 안정효과를 올리고 있다. 황금낙하산제도나 초다수결의제는 제도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기존주주의 이익침해 우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도입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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