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5월 9일] 증권업 진출 확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내에 증권사 간판을 단 회사만 50개가 넘게 됐습니다. 이래서 세계적 투자은행(IB)들과 경쟁이 가능하겠어요?” 최근 기자가 만난 A증권사의 한 임원이 악수를 나누자마자 대뜸 털어놓은 푸념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업자의 텃세 아니냐는 대답에 그는 “국내에 은행이 몇 개고 보험사가 몇 개인지 한번 세어보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9일 예정된 금융위원회의 증권업 진출 예비인가 확정에 대한 불안한 심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업에 몰아닥친 구조조정 한파는 그 어느 업종보다 거셌다. 10년 전 33개였던 시중은행은 18개로 줄었다. 영원불멸할 것 같던 ‘조상제한서’는 이제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보험업 역시 외국계 자본의 진출과 함께 50개 중 20개가 정리됐다. 그러나 증권업으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급격한 구조조정의 파고는 피하지 못했지만 은행ㆍ보험업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중소형 업체들이 명맥을 유지했다. 주인은 심심찮게 바뀌었어도 변변한 통합은 찾기 힘들었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은 적어도 국내 증권업계에서는 남의 일로 치부됐다. 파이(시장규모)는 별반 달라질 게 없는데도 이제 나눠먹어야 할 업체들은 더 많아지게 됐다. 여파는 벌써부터 느껴진다. 때아닌 수수료 경쟁에 업계 인력난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억대 연봉 갖고 여의도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말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올 들어 웬만한 중소형 상장 증권사 치고 인수합병(M&A)설에 한번 휘말리지 않은 회사가 없다. 전형적인 거품의 징조다. 투자자 입장에서 치열한 경쟁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경쟁이 누구를 위한 경쟁인지를 되물었을 때는 걱정이 앞선다. ‘버티는 놈이 살아 남는다’는 식의 제 살 깎기 경쟁은 업계는 물론 투자자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비인가를 받을 업체 중 상당수가 대기업 계열사이기에 걱정이 더 앞선다. “자회사 위탁물량이나 계열사 퇴직연금이나 굴리며 모기업 금고역할로 전락한다면 피해는 누구에게 오겠냐”는 A증권사 임원의 우려가 사실로 나타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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