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은행전쟁엔 주거래銀도 없다

경쟁은행 거래기업에도 공격적 여신공세<br>수십년 주거래관계 하루아침에 무너뜨려<br>"금융시스템 불안정성 높일라" 일부선 우려



은행전쟁엔 주거래銀도 없다 경쟁은행 거래기업에도 공격적 여신공세수십년 주거래관계 하루아침에 무너뜨려"금융시스템 불안정성 높일라" 일부선 우려 조영훈기자 dubbcho@sed.co.kr 지난 3일 서울 강남 현대산업개발 본사 대회의실에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찾아왔다. 주거래은행 관계가 아니었던 이 회사에 경쟁 은행의 행장이 찾아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강 행장은 이방주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와 함께 사이버브랜치 개설식을 가졌다. 국민은행은 사이버 공간에 지점을 개설하고 이 회사와 거래를 텄다.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민은행과 현대산업개발의 경우처럼 은행과 기업 사이의 오랜 주거래 관계가 경쟁은행의 공격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다. 74년 관치금융 시절에 만들어진 주거래은행제도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주채권은행제도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업에 여유자금이 넘치고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주거래(채권)은행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주영구 국민은행 기업자금관리서비스부장은 “주채권은행 개념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기업금융을 통한 무한경쟁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씨티와 신한은행이 주채권은행이었던 볼보건설기계코리아와 구매카드 여신약정을 맺고 우리은행도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이었던 DㆍH그룹에 여신 공세를 펴고 있다. 기업금융 후발주자인 신한은행도 하나은행과 거래했던 SK의 서울 서린동사옥 유동화 사업에 참여, 5조원 규모의 ABS 발행을 따냈다. 은행과 기업 사이에 주거래 관계가 끊어지고 있는 데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자칫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시병 우리은행 대기업심사팀 부장은 “주채권제도는 금융 시스템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며 “경제상황이 좋기 때문에 이런 경쟁이 나오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주거래은행이 진가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주거래제도를 중소기업 금융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세진 인하대 교수는 “대기업이 금융중개보다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로 전환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여전히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에 대한 주채권은행제도의 활용도를 높여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사 고객뺏기 가열 은행권 무한경쟁 확대 여신영업 한계 봉착으로…각종 부가서비스등 무기 기업금융 영역확보 나서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 건전성을 높임에 따라 은행과 기업 사이의 주채권은행제도가 약화되고 있다. 기업들이 부채는 줄이는 대신 잉여자금을 확보하면서 은행권에서 자금을 차입하는 수요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여신 영업의 한계에 봉착한 은행권이 각종 부가서비스를 무기로 대기업에 대한 금융서비스 영역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에 이처럼 경쟁사의 고객 뺏기 싸움이 가열되고 있는 것은 지난해부터 전개된 '은행 전쟁(bank war)'이 글로벌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국내에서 내전 형태로 치러지면서 생긴 필연적 현상이다. 은행들의 주거래 고객 뺏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국민은행은 조흥은행과 주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경동보일러에 구매카드 200억원 약정을 얻어냈고 씨티은행이 주거래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는 외상매출채권 60억원을 따냈다. 우리은행은 다른 은행의 주거래 기업을 공략하기 위해 리커버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은행이 살아남기 위해 여신을 줄이고 거래를 끊었던 기업에 대해 경쟁력 있는 상품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다시 접근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결과 우리은행은 H사 등 대기업에 1조원에 가까운 신규 대출거래를 성사시켰다. 신한은행은 다른 은행과 주거래를 하고 있는 기업이라도 재무분석을 통해 필요 없는 자산의 매각을 위한 매출채권 유동화 등 자산유동화증권(ABS)과 구조화금융 제안을 통해 신규 거래를 트고 있다. 신한이 지난해 네오DWC의 대우캐피탈 인수대금 4,020억원 지원과 SK의 서린동 사옥 유동화 4,400억원을 성사시키는 등 모두 57건(5조4,511억원)의 ABS 발행을 일궈낸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다. 경쟁 은행에서 고객을 뺏기 위해서는 특별한 서비스와 금융기법을 제공해야 한다. 오배록 신한은행 자산유동화팀장은 "주거래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신한이 갖고 있는 첨단 금융기법을 무기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모 은행의 부행장급 인사는 "최근에 B2B(기업간전자상거래) 툴을 제공해 주채권은행이 아닌 그룹에서 1조원에 가까운 대출을 유치했다"면서 "다른 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비즈니스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주거래은행제도는 74년 7월 대기업에 대한 중복여신 억제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돼 기업의 투자와 부동산 취득 등을 직접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부도 도미노 속에 부실 여신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은행법에 따라 '주채권은행'제도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아직까지 관행적으로 주거래은행과 주채권은행의 개념이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대출금과 지급보증을 합한 은행 여신이 2,500억원 이상인 계열기업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김순배 금융감독원 신용감독국장은 "주채권은행제도는 독일에서 비슷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다"고 전제, "주채권은행 변경은 기업이 원하고 은행이 합의할 경우 용인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현재 29개 계열 대기업 가운데 우리은행이 삼성ㆍLGㆍ한화ㆍ두산 등 12개 계열사의 주거래은행을 맡고 있고 산업은행이 한진ㆍ동부ㆍ금호아시아나 등 8개 계열의 주거래은행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3개, 조흥은행이 2개, 국민은행이 1개 계열의 주거래은행으로 선정돼 있다. 입력시간 : 2006/02/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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