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의 금융산업 진입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경쟁을 격화 시켜 은행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줄이며 정책에 협조를 얻기 어려워지는 등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초래한 사례가 세계적으로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진입 영향 및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 지배와 관련해 해외 여러 나라의 사례를 제시하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것을 충고하고 있다.
우선 한은은 외국자본이 특정국가의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로 97년 말을 전후한 아시아 각국의 금융위기 때 일본계 은행들이 대출금을 대거 회수해 충격을 가중시킨 일을 꼽고 있다. 또 90년대 외국자본의 진입이 많았던 아르헨티나에서 2001년 예금동결 조치 등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프랑스계 2개 은행과 캐나다계 1개 은행이 철수를 선언함으로써 혼란이 더욱 커졌던 사례도 들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외자유치`를 만능으로 여겼던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달리 외국자본이 특정 국가의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불분명`하며, 그 자체로 위험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한은이 내린 결론이다.
외국자본이 국가별로 편중되는 데서 오는 불안 요인도 있다. 한은은 대표적인 사례로 뉴질랜드를 꼽고 있다. 호주계 자본이 대부분의 자국 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뉴질랜드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자체 해결능력이 매우 취약하며, 호주의 경제상황에 따라 금융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은행업 자체에 미치는 외국자본의 효과도 긍정적인 것 만은 아니다. 외국자본의 진입은 필연적으로 대출부문의 경쟁을 심화시켜 `예대마진`을 줄이는 등 은행의 수익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헝가리는 정부투자은행의 민영화 과정에서 외국계 은행의 시장점유율이 94년 20%에서 99년 57%까지 급상승, 은행간 가계대출 경쟁이 격화되고 수익성도 나빠졌다. 9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사례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은행들이 주로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가계대출`영업에만 치중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제일ㆍ한미은행 등이 그런 패턴을 보이고 있고,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ㆍ칠레ㆍ콜롬비아ㆍ페루에서도 외국계은행의 중소기업 대출비중은 내국계 은행을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줄어들어 `실물경제의 혈맥`으로 기능해야 할 금융인프라가 점차 제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 한은은 외국계 은행이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점, 외국인주주에게로 수익이 돌아가는 데 따른 국부유출의 문제 등도 외국자본의 은행업 지배에 따른 부정적 효과라고 지적했다.
전세계적으로 외국자본의 자국 금융산업 지배가 높은 지역은 주로 남미와 동유럽 국가들이다. 멕시코, 파나마,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이 외국자본의 은행산업 점유율(총자산기준) 50%를 넘는 국가들이다. 선진국들은 대체로 20% 이내에 머물러 있다. 바꿔 말하면 외국자본의 은행지배 정도와 국가발전도는 반비례 관계로 볼 수 있는데, 외국자본의 국내은행 점유율이 30%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성화용기자 s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