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섬유만 30년 한 친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약간 흥분한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너무 현실을 모른다는 호소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총 2,900억달러를 수출했다. 그 가운데 섬유는 123억달러이고 미국으로 23억달러를 수출했다. 그중 12억달러는 완제품 의류이고 나머지 11억달러는 원사ㆍ직물 및 기타 섬유다. 지난 5년 동안 해마다 전년도보다 10% 이상 수출이 줄어 올해 상반기에 대미 섬유수출액은 9억달러 정도다.
관세 낮아진다고 수출 늘지않아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대미 수출용 섬유는 대개 납기가 급하거나 영업용 샘플 또는 고급품 등 관세 압박이 덜 미치는 소량 주문들이다. 주문이 갑자기 늘어나도 생산할 공장이 없지만 관세가 낮아진다고 소량 주문이 대량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없다. 특히 세계 최대의 섬유 수출국인 중국마저 섬유 등 경공업 투자를 제한하기 시작했는데 인건비가 10배도 넘는 우리나라에서 관세인하에 기대어 수출을 늘리겠다는 것은 너무 안일하다. 현재 8%인 미국의 섬유관세는 점차 낮아질 뿐더러 수출국과 관계없이 적용되므로 현재도 10~20%의 수익을 올리는 중국 베트남 등과 경쟁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산지 규정과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 일색이다. 현재는 한국에서 의류를 가공하면 한국산으로 간주하지만 앞으로 원단을 기준으로 하면 당연히 관세감면 대상이 줄어들고 원사 기준으로는 더욱 적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합성섬유사를 제외하면 현재 국내 생산이 전무한 실정이고 그마저도 최근 중국산 등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자 나일론 공장이 폐쇄되거나 아크릴릭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반면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한미 FTA 4차 협상에서 섬유분과는 ‘얀 포워드(Yarn Foword)’ 규정을 고집하는 미국 측과 ‘패브릭 포워드(Fabric Foword)’ 방식을 요구하는 한국 측 입장이 맞서 예정일을 하루 남긴 채 협상을 중단했다. 얀 포워드는 원사 생산지를, 패브릭 포워드는 원단 생산지를 각각 원산지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다.
기업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개성공단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한결같은 논리다. 베트남 정부는 무상으로 땅 내주고 도로 닦은 뒤 전기ㆍ수도까지 싼 값에 주는데 임대료 높고 언제 나가라고 등 떠밀지 모르는 북한에서 왜 사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이었지만 미국이 개성공단의 거래중단을 요구할지 모르겠다는 게 그의 걱정이었다.
결국 섬유 분야와 관련해서는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게 없다는 것이고 한국 섬유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미국은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마지못해 합의해줄 것이라는 예측이다. 차라리 미국과 먼저 FTA를 합의한 개도국으로 진출하든가 아니면 개성공단을 철저하게 중간재 생산지로 활용하든가 그도 아니면 원산지에 관대한 유럽과 먼저 합의한 뒤 미국과 협상에 나섰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전분야를 살펴봐야 올바른 접근인 만큼 섬유 분야만 놓고 한미 FTA의 성패를 판가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얻어내려는 목표에 실리가 없다면 궁극적으로 협상에서 얻는 이득도 크지 않을 것이다. 당초 우리 협상단이 개방의 이점이 있다던 의료 및 법률 서비스 등에는 미국 측이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고 최근 우리가 고삐를 죄고 있는 반덤핑 분야에서도 미국 협상단은 자국법이 악화된다는 이유를 들어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FTA 실리 국민에 설득해야
그러나 우리가 철폐를 원하지만 미국이 꿈쩍도 안 하는 제로잉(Zeroing) 방식은 세계무역기구(WTO) 패널에서 이미 국제협정에 위배된다는 잠정결정이 내려진 상태이고 최소부과원칙 등도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확립된 만큼 미국 측은 지나친 ‘법률 제국주의’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제로잉은 수출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높아 덤핑 마진이 마이너스인데도 제로로 처리, 고율의 덤핑방지관세율을 매기는 방식이다. 따라서 우리 협상단은 지나치게 자국법을 강조하는 거대 미국에게 글로벌스탠더드를 지렛대로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는 동시에 얻을 게 없다는 우리 측 협상목표 분야에서 무엇을 기대해도 좋은지 손에 잡히는 숫자로 국민을 설득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