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교육 가수요의 함정

강동호 <사회부 차장>

‘뜨거운 교육열’로 대변되는 우리 학부모들은 정작 교육에도 가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부동산시장의 가수요는 초가삼간 다 태우더라도 어떻게든 때려잡아야 한다는 식의 정부 정책에는 공감하면서도 교육시장에 가수요가 있다는 지적에는 애써 귀를 막는다. 다른 모든 시장에서와 같이 교육에서의 가수요 역시 투기적인 기대심리로 나타난다. 전망 좋은 대학이나 학과에 입학(=선취매)해 다른 사람보다 좋은 결과를 얻어보겠다(=투기수익)는 열망은 결국 시장에서의 초과수익 추구와 다르지 않다. 졸업 후 돈벌이가 잘되고 권세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는 개개인의 적성이나 능력ㆍ취향 따위는 매몰시키고 만다. 우리 교육계의 위기는 상당 부분 이 가수요에 기인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과거 교육의 절대 빈곤 속에서 가수요는 ‘잘살아보자’는 향상심(向上心)의 원천이었으나 이제는 교육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막는 유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넘는 대학진학률과 그 졸업생의 광범한 산업예비군화, 이공계보다는 고시와 의대ㆍ한의대에 대한 광적인 집착 등은 교육 선택이 더 이상 자원배분의 효율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월 말 교육부의 한 보고에서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소질이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소수 일류대학에 집중적으로 보내려는 이른바 교육 가수요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인재육성이나 인력개발을 언급하던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거의 처음인 듯한 이 발언은 그가 고졸자이기 이전에 교육에 대한 한(恨) 풀이식 접근 방식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미덕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려 한 것 아닐까. 사실 교육에 대한 가수요는 타인에 대한 은근한 질투와 적개심과 연결돼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자신의 세대에 해소하지 못한 한이나 욕구를 자식대에게까지 이전시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간에 걸친 대리전 전략은 본래의 의도를 숨기고 교묘한 논리로 끊임없이 자신을 위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공연한 투쟁 선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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