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추억 한 되… 인심 한 말…

市場, 그곳에 가면 고향이 있다<br>먹거리 넘치는 정선 5일장 '전국적 명소' <br>북평장, 대형마트 공세 속에도 규모 커져<br>추석 앞둔 재래 시장 풍경




『 지난 17일 오전 9시 30분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정선행 시외 버스 앞. 50~60대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버스에 오른다. 서울 잠실에서 왔다는 김옥정(54) 씨 일행은 정선에 도착할 때까지 3시간 30분동안 쉴 새 없이 시장 얘기, 자식 얘기를 나누며 마치 소풍 가는 소녀들처럼 들떠 있다. 김 씨는 정선 5일장에 햇고추와 들기름을 사러 간다. "작년부터 정선 5일장에서 햇고추를 사다 고추장을 담갔는데 고추장 맛이 꿀맛 같더라고요." 하지만 꼭 고추장 맛 때문만은 아니다. 정선 5일장에 올 때마다 40~50년 세월을 거슬러올라 엄마 손을 잡고 고향 장터에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 추억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정선장에서 만난 강순옥(70) 할머니는 주름 잡힌 손으로 직접 딴 다래, 머루, 산초 등을 좌판에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정선으로 시집온 후 스무 살 때부터 장만 서면 집에서 옥수수 가루로 쑨 엿을 갖고 나와 장에서 팔았지. 그 때부터 별명이 '엿장수 새댁'이 됐어." 30여년 전부터는 산나물을 캐서 이렇게 하루 벌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손님이 다래 가격을 물어보고 1만원어치를 사자 "이건 정이야"라며 한 움큼 더 얹어준다. 그 모습을 보니 외할머니 품을 만난 것처럼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정춘경 정선군 문화관광가이드는 "정선 5일장에는 230여개 점포, 150여개 노점상이 장사를 하는데 외지인만 하루 평균 1,000명이 넘게 찾으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품 5일장으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잊고 있던 '그때 그 시절'을 찾아 5일장에 온다"고 귀띔했다. 이맘 때면 추석 준비로 대형마트나 백화점마다 인파로 붐비기 마련이지만 시골 5일장이나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장(場)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곳에 가면 고향의 냄새, 고향의 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골 할머니가 좌판에 모아놓은 흙묻은 파는 가지런히 다듬어져 투명 랩에 씌워진 대형마트의 그것보다 더 싱싱해 보인다. 수산시장의 대야에 담겨있는 문어는 살아 펄떡인다. 단골 가게 아주머니가 주는 '덤'이 있고 흥정도 있다. 아침엔 '마수걸이' 에누리, 저녁엔 '떨이' 에누리의 재미도 있다. 그래서 시장은 잠시나마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인생의 정거장' 같은 곳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나물이나 옥수수 같은 옛 먹거리뿐만 아니라 추억까지 파는 '마음의 장터'이기도 하다. 이번 추석에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고향의 향수를 찾아 시장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잇고 있는 시골의 5일장, 전국 각지의 재래시장에는 현대화된 쇼핑시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와 후한 인심, 넉넉한 마음이 묻어난다. 시장통을 누비니 안 먹어도 절로 배부른 기분이랄까.』 5일마다 열리는 잔치… 대형마트엔 없는 情을 팝니다 시장에선 좌판에 산나물과 각종 채소ㆍ과일들을 늘어놓고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풋풋한 정이 느껴진다. 옥수수전, 감자전의 구수한 냄새에서도 훈훈한 인심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새끼를 꼬아 짚신이며 망태기를 만들어 파는 어르신들의 굳은 손마디에서는 보릿고개를 겪던 가난과 마음 고생 등 삶의 흔적들도 만날 수 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요즘 같은 상설시장이 없던 시절 5일마다 찾아오는 장날은 한 마디로 축제의 공간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엿판을 목에 맨 채 신명 나게 가위 소리를 내는 엿장수, 각종 나물과 생선 좌판에 모여 앉은 어른들이 장사꾼과 흥정을 벌이는 속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흥분과 긴장감, 뽑기 좌판에 앉아 설탕 과자에서 별 모양ㆍ비행기 모양 무늬를 떼어내느라 진땀을 빼는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망울…. 이 모든 것이 무료한 시골 생활에 떨어진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같은 즐거움을 주었던 장면이다. 먹거리 넘치는 정선 5일장 '전국적 명소'
북평장, 대형마트 공세 속에도 규모 커져 ◇강원도 정선 5일장 5일장의 대명사가 된 정선 5일장(2, 7일장)은 지난 66년 2월 17일 처음 열렸다. 초기에는 인근 산골에서 채취되는 산나물과 생필품을 사고 팔던 작은 장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주위 관광지와 연계된 체험 여행 코스로 개발되며 널리 알려졌다. 재래 시장을 도는 장돌뱅이들은 '동해, 태백, 양양 등 강원 지역 5일장 중 정선에서 셈이 가장 낫다'고 했다. 추석을 앞둔 요즘 정선 5일장에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국수가 딱딱해져 콧등을 친다고 '콧등치기'라고 불리는 메밀국수, 곤드레 나물에 깨소금 등으로 버무린 곤드레밥,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 묵, 메밀 부치기 등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들이 즐비하다. 가을에는 산초, 더덕, 곤드레, 취 등 가을걷이 나물들이 특히 인기다. 김영덕(48) 씨는 "추석을 앞두고는 머루와 오미자 다래 등 산열매와 무릎 아플 때 효능이 있는 산초가 잘 팔린다"고 귀띔했다. '햇취나물 5,000원 햇밤 5,000원' 정성스레 쓴 종이가 눈에 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안승임(80) 할머니의 좌판이다. 할머니는 서울 마포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남편이 교편을 놓게 되자 서른살이 되던 해 주문진으로 와 생선을 떼서 진부, 대화, 평창, 정선 등지로 팔러 다녔다. 안 할머니는 "당시에 '령(고개)을 넘으면 장사가 잘 된다'는 말을 들었고 6남매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장 서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고 말했다. 140㎝ 겨우 넘을만한 작은 키로 어떻게 생선 담은 무거운 광주리를 이고 다니셨을까. "그 때는 눈에 뵈는 게 없었지. 무조건 애들을 먹이고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으니까. 다들 공부 잘하고 결혼해서 자식들 낳았어. 얼마 전에는 손주 한 녀석이 대학 졸업하고 방을 얻는다고 해서 1,000만원이나 보태줬는걸." 이제 생선을 들고 다닐 기력이 달리는 할머니는 산나물과 감자떡 판매로 '전업'했다.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듣던 중 경기도 광명에서 왔다는 서용철(35) 씨가 할머니에게 옥수수 가격을 물었다. 할머니는 감자떡 하나 먹어보라고 서 씨 입에 넣어주자 수줍게 웃으며 떡을 받아먹었다. 서 씨는 "높은 산이 에워싸고 있는 정선은 왠지 모르게 편안하고 안락한 할머니 품 같은 느낌이 들고 다른 곳보다 시골의 향기가 진해서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여주 5일장 지난 20일 찾은 여주 5일장에는 눈이 즐겁고 귀가 신나는 것들이 많았다. 5일장을 따라 다니는 떠돌이 장꾼들의 좌판부터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끼고 온 오리, 토끼, 강아지, 씨암탉, 흑염소까지 나와 있어 엄마 손을 잡고 구경나온 아이들이 연신 환호성을 질렀다. 시골 장터의 배경 음악으로 빠질 수 없는 '뽕짝 메들리'와 30년 넘게 이 곳에서 엿 장사를 했다는 춤추는 엿장수 재롱둥이 장천하 씨의 구성진 트로트 노래 소리도 정겨웠다. 여주 5일장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는데 바로 '만두가게 팔남매'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명물이다. 간판도 없이 여주와 장호원에서 5일장이 열릴 때만 장사를 한다는 이 만두가게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찜통에서 만두와 찐빵을 쪄내자마자 순식간에 다 팔려버린다. 8남매 중 막내로 열 살부터 만두를 빚었다는 주인 김일만(48) 씨가 쫄깃한 만두피에 각종 야채와 김치를 넣어 만든 만두는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 "장이 설 때마다 잊지 않고 와 주시는 손님들 덕택에 장사가 즐겁지요." 김 씨는 연신 만두를 빚어 찜통에 올리고 부인과 딸은 도넛과 찐빵을 파는 장면은 푸근한 '가족사진' 그 자체다. 직접 재배한 고구마와 고추를 팔러나온 김복녀(69) 할머니는 충청도에서 시집와 50년 가까이 장만 서면 나물이며 채소를 갖고 나와 판다. "집에만 있다가 이렇게 시장에 나오면 콧바람을 쐬고 사람 구경도 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아져요." "7살짜리 딸한테 옛 장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여주까지 찾아왔다"는 정병준(37) 씨는 옛날 생과자며 청양고추며 장을 잔뜩 보고 돌아간다. ◇강원도 동해 북평 5일장 매달 3, 8일에 서는 강원 동해시 구미동의 북평 5일장은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것 같다. 도무지 시장이 들어설 것 같지 않은 허름한 골목길에 이른 새벽 조판이 하나둘씩 서기 시작하더니 금세 끝이 보이지 않게 난전이 늘어섰다. 북평시장이 시작된 건 조선 정조 20년(1796년)으로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북평장이 특별한 것은 오랜 내력 때문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재래 시장이 대형마트의 공세에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북평 5일장에 가면 여전히 생기가 넘친다. 노점을 포함한 점포수가 800개를 넘어서고 갈수록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장이 커지기 때문. 북평 5일장에는 장날에 맞춰 전국을 떠도는 이른바 '장돌뱅이'들도 적지 않지만 몇 줌의 곡식과 달걀, 채소, 과일 따위를 난전에 펼쳐놓은 노인들이 특히 많이 눈에 띈다. 이들이 새벽부터 지고 나온 물품은 저마다 집 앞 텃밭에서 길러내거나 손수 다듬은 것들이다. 고무 대야 가득 미꾸라지를 넣고 파는 임부녀(75) 할머니는 "농사 짓는 아들이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 나가서 잡아낸 것"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다른 좌판의 할머니는 기르는 암탉이 낳았다는 달걀 다섯 꾸러미를 풀어놓았다. 달걀은 크기도 제 각각인데다 유통 기한도 표시돼 있지 않았지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장날에만 문을 여는 식당에서 차게 말아낸 2,500원짜리 잔치국수를 후루룩 맛보는 것도 즐겁다. 나무로 깎은 송아지 코뚜레나 강아지, 토종닭, 흑염소까지 파는 노점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추석 앞둔 재래 시장 풍경
차례상·추석빔 경기 안좋아도 '불변의 대목' 전통 시장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생동감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막혀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호흡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 품, 혹은 잃어버린 고향에 다시 온 것 같은 익숙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다. 혹자는 시장에서 배어 나오는 사람 냄새는 바로 시장의 경쟁력이자 디지털 시대에 다시금 찾게 되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고 말한다. ◇강릉시 주문진수산시장 "주문진에서 나 모르면 간첩이나 마찬가지야." 50여년간 주문진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해와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전라도정임이네횟집의 김정임(78) 할머니는 광어와 방어 회 한 접시를 주문 받자 바쁘게 칼을 놀리며 말했다. 지난 19일 찾은 주문진수산시장에서 만난 김 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고무 대야에 생선을 담아 이고 다니며 장사해서 자식들을 다 키웠고 지금은 며느리가 장사를 도와준다"고 했다. 정임이네횟집에서 친구들과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을 걸치던 송정호(41) 씨는 "춘천이 집인데 가끔 회가 생각날 때면 이렇게 찾아온다"며 "자식 챙기듯 인심이 후하셔서 다른 횟집에 갈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주문진수산시장은 복어와 오징어 등 수산물과 명태, 한치 등 다양한 건어물을 취급한다. 최근에는 시설을 현대화해 바로 앞에 자리한 주문진항 어판장 시장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외지인이 즐겨 찾는 명품 재래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매년 10월이면 오징어축제를 열어 관광객이 평소의 10배에 이르면서 연간 유동인구가 1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수산시장 길 건너편 주문진항 어판장 시장에서는 그날 배에서 떼온 생선들을 파는 상인들의 목청 소리가 드높았다. 활어 전문 판매상인 '미옥이네'를 운영하는 김미옥(66) 씨는 "여기 항구좌판은 생선들이 싸고 싱싱해서 외지 손님들도 즐겨 찾는 곳"이라며 "추석이 다가오면서 오늘은 차례상에 올릴 생선을 사러 오는 손님들도 꽤 많다"고 전했다. 시장 중앙에서 문어를 파는 조영숙(61) 씨는 "경상도 사람들이 차례상에 꼭 올리는 음식이 문어인데 오늘은 크고 싱싱해서 다른 날보다 잘 팔린다"고 귀띔했다. 서울에서 온 정순녀(64) 씨는 문어를 세 마리 구입했다. "고향이 강릉이라 가끔씩 명절 1~2주 전에 이곳에 와서 생선을 사곤 하지요. 서울 노량진시장에서는 한 마리에 8만원이 넘는 문어가 여기서는 3만원밖에 안 돼요." ◇방학동도깨비골목시장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는 도깨비골목시장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시장이 있다. 지난 82년 당시 할머니 노점상으로 시작된 골목시장은 구청 단속반에게 쫓기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마치 도깨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난 18일 시장에서 만난 윤종순(56) 상인회장(동해야채 운영)은 "20여년 전에는 근처에 3~4개 재래시장이 번창할 정도로 상권이 좋았는데 대형 마트가 생기면서 우리 시장만 남았다"며 "2004년 9월 상인들이 힘을 합쳐 처음으로 반짝 세일 행사를 시작했는데 하루 10만명이 찾을 정도로 큰 성과를 이뤘고 고객들이 지금도 꾸준히 시장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떡집들은 저마다 매장에 '추석 송편 주문 받습니다'라는 안내문을 써 붙이고 명절 준비에 분주했다. 모시개떡, 모시인절미, 모시주먹송편 등 모시 잎을 재료로 떡을 만드는 한솜씨家떡의 최종례(42) 씨는 "요즘은 송편을 직접 빚어 먹는 집들이 적은 것은 물론 송편 자체를 사 먹는 손님도 갈수록 줄고 있다"며 "옛 조상들이 당뇨와 혈액순환에 효능이 있는 모시 잎을 재료로 떡을 만드는 방식으로 다른 떡집과 차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석에 쓸 송편을 주문하러 나왔다는 송숙희(56) 씨는 "옛날에는 방앗간에서 빻은 멥쌀로 떡 반죽을 만들어 깨, 녹두, 밤 등 각종 소를 넣어 송편을 빚는 게 추석의 가장 큰 행사였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며 추억에 젖었다. 이날 시장엔 병아리처럼 줄지어 다니는 유치원생들이 등장해 상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시장 견학을 나온 유치원생들은 호기심 가득찬 눈빛으로 "이건 뭐예요?", "이건 어떻게 먹는 거예요?" 하며 연신 질문을 해댔다. 김지영(28) 인솔 교사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재래시장 풍경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라며 "예전 방식의 상거래를 간접적으로 배우며 쌀 한 톨, 나물 한 뿌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로 광장시장 종로 5가 광장시장은 지난 1904년 일본인들이 장악한 상권을 되찾기 위해 우리 상인들이 나서서 설립한 시장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국내 의류 원단이나 한복은 대부분 광장시장을 통해 전국 각지로 공급된다고 할 정도로 물류 허브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상권이 위축됐다. 광장시장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바로 한복 가게. 특히 요즘은 혼례용 한복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아동용 한복이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구용림(70) 구정한복 대표는 "추석이 다가오면서 추석빔 한 벌 해 준다고 할머니들이 손주 손을 이끌고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손님들이 추석 대목 손님"이라고 말했다. 김기준(61) 상인회장은 "한복 수요가 많이 줄어 아쉽지만 광장시장은 따뜻한 정이 흐르는 재래시장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청계천이 복원된 후 야식을 찾는 고객이 늘면서 광장시장의 빈대떡거리가 새 명물로 떠올랐다. 직접 녹두를 맷돌에 갈아 부치는 먹음직한 녹두빈대떡에 산적, 생태전, 호박전, 동그랑땡 등 차례상에 올라갈법한 음식들도 즐비하다. 북문 2문 앞에는 박하사탕, 젤리사탕 등 옛날 사탕을 펼쳐놓고 파는 김옥순(83) 할머니가 있다. 한 소쿠리에 2,000원으로 가격이 싼데도 대형 제과 브랜드에 밀려 손님은 적은 형편이다. 그나마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은 옛 향수에 젖고 싶어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 이날 박하사탕 2,000원 어치를 산 전여분(62) 할머니는 "어렸을 땐 사탕이 워낙 귀해서 명절 때나 맛볼 수 있었다"며 "손주한테 주고 싶어서 사긴 했는데 애들이 이런 것을 먹을지나 모르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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