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관료의 입

수도권 남부에 고급형 단독주택이나 저밀도 중대형 아파트가 들어설 300만평 규모의 한국형 베벌리힐스 조성을 검토 중이라는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의 지난 7일 발언이 ‘긴 꼬리’의 후유증을 낳고 있다.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는 부랴부랴 “우리 부처로서는 300만평 규모의 신도시를 개발할 계획이 없으며 재경부와 협의한 바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에서는 재경부 고위관계자의 말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번 파문의 당사자인 재경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8ㆍ31부동산종합대책 마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생뚱맞은 얘기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 부처간 이견이 많아 8ㆍ31대책에서 제외됐다”는 본인의 말처럼 결정되지 않은 정책이라면 신중한 처신이 필요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처럼 무대 뒤에서 튀어나오는 관료의 돌출성 발언은 정책 결정의 공식 매커니즘을 통해 발표되는 정책보다 시장의 판단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재경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언급한 후보지는 판교 남단에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분당 백현동의 남서울CC 주변이라는 그럴듯한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재경부야 주무부처가 아닌 만큼 ‘아니면 말고 식’의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뒷수습은 고스란히 건교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역시“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것이냐, 아니면 조장하는 것이냐”는 여론의 화살이 애꿎은 건교부로 향하고 있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한 두 번도 아니고 정말 죽을 맛”이라며 “만일 우리 부가 부동산 관련 세금에 대해 얘기했다면 재경부는 아마 쥐 잡듯 책임을 물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 부처 내에서 이뤄지는 정책수립 과정은 민간 기업의 비즈니스와 비교해 특별히 어렵거나 복잡한 일은 없다. 단지 다른 원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행정은 정책의 대상이 포괄적이고 강제집행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책임 없는 흘리기 식 정보누출은 금기시되고 있다. 자칫 부정확하고 편향된 정보가 진실처럼 들리고 오히려 정확한 발표는 거짓말처럼 비쳐져 정부 스스로의 정책 선택 폭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8.31 대책이 성공하려면 관료의 ‘입’부터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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