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3월 31일] 부엌 밖으로

정부가 한식의 세계화를 선언했다. 정부는 최근 “한식세계화ㆍ산업화 추진단을 오는 4월 중 출범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공동 단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대통령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한식세계화ㆍ산업화 추진단 명예회장 직함을 갖고 관련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칭찬 받을 만하다. 사실 북미와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어느 곳을 가봐도 변변한 한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비교적 우리나라 사람들의 내왕이 잦은 유럽만 가도 정작 번듯한 한식당은 드물다. 물어물어 찾아가보면 그저 변두리 뒷골목에 유학생 부부나 교민들이 운영하는 구멍가게(?) 수준의 한식당들이 있을 뿐이다. 외국에선 찾기 힘든 한식당 유럽이 이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몇해 전만 해도 관광객들이 일년 내내 북적대는 이집트 카이로에는 한국에 취업했던 이집트인 근로자가 차린 한식당이 겨우 한곳 있었다. 기자는 그곳에서 식사를 하는 내내 그 조악한 음식이 외국인들에게 각인시킬 한국 이미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이미 세계화에 성공한 일식은 런던이나 파리ㆍ로마 등 대도시 어느 곳이든 중심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30일자 신문에는 ‘파리에 넘쳐나는 일본 라멘집들 때문에 파리지앵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뉴스까지 실렸다. 지구촌 곳곳에 뿌리내린 화교들이 퍼뜨린 중국요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돈을 벌면서 동시에 자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중식과 일식이 이처럼 세계화에 성공한 것을 보면 한식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식자재나 조리법도 비슷한데다 일본ㆍ중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에 환장하는 걸 보면 경쟁력은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한식은 열량이 낮아 서양에서 불고 있는 웰빙트렌드와도 맞아 떨어진다. 또 서양음식은 육류를 굽거나 튀기는 과정에서 벤조피렌 등 발암 물질이 생성되는 데 비해 찌거나 삶는 한식은 그 같은 유해 물질로부터 안전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식이 세계화에 뒤처진 이유는 무엇일까. 식문화의 중요성을 외면하고 보급을 게을리한 일차적 책임은 물론 정부에 있겠지만 기업들도 날선 추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최근 십여년 동안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굴지의 대기업들은 해외 외식업체들로부터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사들여 국내에서 머리가 터지는 경쟁을 벌여왔다. 우리의 DNA 안에 내재한 식문화의 잠재력을 일깨울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 업체에 돈을 주고 조리법과 매뉴얼을 배워 손쉽게 내국인 지갑의 돈을 챙겨온 것이다. 그들은 영세한 자영업자들과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경쟁에서 밀린 자영업자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먹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 중 80%가 개업한 지 3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통계만 봐도 이는 그냥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해외 외식시장 우리와 가장 가까운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지난해 외식산업 매출은 762조원(5,660억달러: 출처 내셔널 레스토랑 어소시에이션)에 달했다.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3배 규모다. 엄청난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외식산업은 경기방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미국에서는 이 난리통에도 올해 외식산업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2.7%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한식업체의 미국진출 현황을 살펴 보면 비빔밥과 죽을 판매하는 중소 업체인 ‘본죽’이 가맹점 다섯개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외 지역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류타령으로 날이 새는 아시아 지역 역시 본죽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 각 한곳씩 점포를 운영하면서 체면을 세우고 있다. 반면 내로라는 대기업의 한식 사업 해외진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해외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면ㆍ읍소재지까지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열어 자영업자들과 밥그릇 싸움을 마다 않는 대기업들이 한식의 해외 진출을 미루고 있는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다. ‘큰 자본과 마케팅이 필요한 해외 외식시장에는 대기업들이 진출을 하고 국내 시장은 영세한 자영업자들에게 맡길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써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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