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단기 부동자금의 생산적 활용

유병규<현대경제硏 상무 >

국내 경제에 단기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다. 만기 6개월 미만의 금융상품에 예치된 자금이 무려 400조원을 웃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부 예산의 두배가 넘는 막대한 자금이다. 사용처가 분명하지 못한 뭉치자금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암적인 요소가 된다. 우선 거대자금이 단기수익을 좇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면 자산시장이 교란된다. 단기자금의 빈번한 유ㆍ출입이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의 이상 과열과 급락 현상을 되풀이시키는 것이다. 더욱이 과도한 단기부동자금은 금융과 실물 부문 전체의 경제시스템을 붕괴시킬 우려도 있다. 기업 도산과 같은 외부충격으로 단기금융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오면 해당 금융기관이 부실해지고 이것이 다른 금융기관에까지 파급돼 결국 실물 부문에 대한 자금지원이 불가능해지는 금융경색 현상이 유발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러한 자금들이 해외로 대량 유출될 때는 국내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급락해 해외자본 조달이나 외화 부채상환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우리 경제에 유동성이 풍부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활용하기에 따라 국내 경제를 살리는 종잣돈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부정적 영향을 해소하는 한편 이를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단기자금의 중장기화를 유도할 수 있는 국내 금융 부문의 구조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고수익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한편 주식투자의 기본 수익률을 제고해 단기자금이 이들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대폭 축소된 중장기 금융상품에 대한 비과세 및 세금우대 지원을 강화하고 적립식 펀드에 대한 세제혜택 부여 등으로 금융상품과 주식시장의 매력도를 한층 높이는 것이 이를 위한 방안들이다. 또한 사모 펀드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제도 보완과 함께 장기채 발행이 활성화될 수 있는 채권시장도 육성해야 할 것이다. 실물 부문에서는 단기부동자금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들의 투자 증대 여건을 최대한 조성해야 한다. 내수경기가 침체일로를 내닫고 있는 국내 경제 현실에서 기업의 투자증가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발휘하는 만병통치 처방전이다. 투자 증가는 부동자금을 줄여 경제의 불안정성을 축소하고 고용을 늘려 소비를 촉진해서 다시금 투자를 증대시킴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고 지속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금리를 상승시켜 금융상품의 수익률을 높여 단기부동자금의 생성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기업들이 자금 사정의 여유 속에서도 국내에 투자하기가 어려운 현실에 봉착해 있는 점이다.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가 일단 어렵고 그나마 투자를 하려해도 거미줄처럼 걸리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제나 수도권 제한과 같은 각종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경제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한시적이나마 사안별로 경직적인 공정거래제도나 균형발전전략의 정책 틀에서 벗어나는 정책 추진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가 이를 못하면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늘 질책을 받는 국회에서 ‘기업 활동 규제 완화 특별법’이라도 제정해 기업투자 증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규제를 조금만 풀면 당장 11조원이 넘는 투자 효과가 발생한다는 경제계의 하소연을 흘려들어서는 안되겠다. 정부가 하반기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건설ㆍ이전ㆍ임대(BTL)’ 방식에 의한 민간투자 유치 방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추진 방식에 대한 중소건설업체들의 반발과 위헌 논란에 빠져들고 있어 하반기 정부 투자계획의 실효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민간기업의 투자활성화는 막대한 부동자금을 생산적으로 활용해 하반기 이후 경기회복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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