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선택 2007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①경제성장<해외>

스웨덴 모델 핵심은 "성장 통한 분배"

지난 13일 스웨덴 국회의사당 부근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스웨덴 국민들은 겨울이면 오후2시만 돼도 어두워지는 척박한 환경을 딛고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모델을 구축했다. /스톡홀름=최형욱기자

지난 15일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인근의 한 항구. 전세계적으로 부유층의 상징인 요트가 항구를 꽉 메우고 있었다. 스톡홀름 인구는 79만명. 그런데 스톡홀름에 등록된 요트만 28만대에 달한다. 19세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스웨덴이 왜 복지국가의 대명사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겨울에는 오후3시만 되면 깜깜해질 정도로 북구의 오지인 이 나라는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한국이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는 데 벤치마킹이 필요한 강소국, 국민 한사람이 동거와 결혼을 평균 7번이나 반복하는 자유연애의 나라, 혁신 산ㆍ학ㆍ연 클러스터의 원조, 높은 세금과 복지의 국가, 노조천국 등등. 하지만 이번 취재기간은 스웨덴에 대한 한국 내 인식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절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민당 패배, 스웨덴 모델의 위기인가=지난해 9월 한국에서 스웨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커졌다. 8월 참여정부가 성장ㆍ분배를 동시에 달성한다는 ‘비전 2030’을 발표한 지 불과 한달 만에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총선에서 우파 연합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우파 연합은 실업수당 축소, 세금 감면, 국영기업 민영화, 부유세 폐지 등을 공약했다. 스웨덴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비전 2030’은 즉각 실효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우파 연합의 승리는 스웨덴 모델의 종말을 뜻하는 것일까. 스웨덴 방문기간 중 사민당ㆍ경제인단체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던진 질문이었다. 이구동성의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신정완 스톡홀름대학 태평양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성공회대 교환교수)는 “국민들이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에서 등을 돌린 게 아니라 예란 페르손 전 총리의 장기 집권에 대한 염증 때문이거나 선거 직전 고급빌라 매입 등 일시적 요인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사민당 당수가 바뀌면서 사민당 지지율은 42.5%로 급등, 13년 만에 최고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좌파 연합을 합치면 54.2%에 이른다. 스웨덴 국책연구소인 비노바(VINNOVA) 혁신시스템 분과의 애널리스트 잔 에들링은 “현 우파 정부는 복지제도의 근간이나 노사관계법은 크게 건드리지 않고 있다”며 “일부 측면에서는 사민당보다 사민주의적 정책을 펴면서 스스로 신노동당으로 표현할 정도”라고 말했다. ◇성장지향적인 복지정책이 핵심=그렇다면 우파 연합마저 포기하지 않는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무엇일까. 에들링은 “성장지향적인 분배정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스웨덴은 1930년대 이후 기본적으로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성장 극대화 정책을 줄곧 추진해왔다. 동반성장은 기본적으로 ‘선분배 후성장’이 아니라 성장을 통해 분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비안 발렌 스웨덴기업연합 이코노미스트는 “개방경제와 자유무역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발렌베리 일가가 노키아 등 스웨덴 대표기업들의 오너인 데서 드러나듯 대기업 의존도는 우리나라보다 더 높다. 독점기업 용인과 차등의결제, 낮은 법인세, 노사간 타협 문화, 친기업적인 정책 및 규제완화, 안정된 정당정치, 인재 교육 등은 우리 기업들이 부러워할 요소다. 복지국가의 뒷면에 자본천국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김인춘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는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성장과 고용에 중점을 두고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꾀했다는 점”이라며 “분배정책도 훌륭했지만 분배를 가능하게 만든 성장정책은 더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우파 연합의 승리도 스웨덴식 복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민들의 전략적인 선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발렌 이코노미스트는 “조기퇴직, 장기 병가 등으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1%에 이른다”며 “국민들이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라도 일부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게 우파 승리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 모델에도 변화의 바람=하지만 스웨덴 모델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세금부담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고 있고 정부 지출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3분의2에 달해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고령화와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 이민자 사회통합, 지역간 소득격차 확대 등도 고민거리다. 발렌 이코노미스트는 “각종 세금부담 증가, 노동시장 경직성 등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가령 60년대 이후 민간 산업의 고용은 2,000명밖에 늘지 않았고 간호사ㆍ교사 등 공공 부문의 일자리만 늘었는데 이는 스웨덴 경제에 매우 위협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복지 함정’에 빠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이머징마켓(GEM)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의 창업률은 불과 4%로 7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70위에 불과하다. 일을 하지 않아도 실직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기업가 정신이 퇴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웨덴 모델에도 변화의 기운이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금융ㆍ통신 부문을 자유화하고 항공기ㆍ철도ㆍ미디어 부문에서 친시장적인 정책이 나오고 복지 기능의 일부 민영화, 기업 세금 인하, 실업수당 감소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스웨덴의 현 상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발렌 이코노미스트는 “복지국가 스웨덴도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못박았다. 전 재무장관으로 사민당의 2인자인 파르 누데르 국회의원 역시 스웨덴 모델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면서도 한국에 대해 비슷한 조언을 내놓았다. 그는 “스웨덴식 복지 모델은 복지 그 자체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복지”라며 “가령 육아휴직ㆍ직업교육ㆍ실업수당 등은 사람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돕는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고유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에들링 애널리스트는 “스웨덴 모델은 지난 100년 동안 수정ㆍ보완돼 발전해왔고 지금도 세계화 등 상황에 맞게 변신 중”이라며 “스웨덴에서 성공했다고 한국에 곧바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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