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X파일'수사 이건희 회장 겨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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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 때 삼성이 이회창 후보측에 대선자금을 제공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안기부 X파일' 내용을 근거로 한 참여연대 고발 사건이 이건희 회장을 겨냥한 검찰의 본격 수사로 점화될까.
극도의 보안 속에 `정중동(靜中動)' 방식의 수사를 꿋꿋하게 이어가고 있는 검찰 내부의 정확한 동태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지만 검찰 안팎 분위기는 수사팀으로하여금 삼성의 대선자금 제공의혹을 수사하도록 이끌어가는 양상이다.
참여연대 등 10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X파일 공대위'는 연일 서울중앙지검과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삼성의 대선자금 제공의혹과 삼성에서 `떡값'을 받았다는 전ㆍ현직 검찰간부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총장을 통한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천정배 법무장관도 국회에 출석해 X파일과 관련, "검찰은 사회의 여러 강자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강력한 검찰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이라며 수사팀을 독려하고 있다.
나아가 천 장관은 "만일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법에 따라 구체적 사건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할 용의도 있다"면서 삼성과 관련된 비리의혹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검찰이 1997년 `세풍 사건' 기록을 꺼내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예사롭지 않은 징후임에 틀림없다.
이회창씨의 동생 회성씨가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모금한 이른바 `세풍 사건' 수사 당시 검찰은 회성씨가 삼성에서 60억원을 전달받은 혐의를 포착하고도 국세청을 동원한 강제모금이 아니기 때문에 개정 전 정치자금법으로는 처벌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관련 혐의를 공소사실에서 제외했었다.
이에 대해 천 장관은 23일 원점에서 수사를 할 수도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천 장관은 "세풍 사건 처리를 당시 수사팀이 잘못했다고 할 것은 아직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삼성이) 돈을 조성하는데 있어 배임ㆍ횡령이 있을 수 있고 금액이 50억원 이상이면 특경가법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특경가법상 횡령죄는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시효완성 시점까지는 2년 이상이남아있는 만큼 삼성의 대선자금 부분을 재수사해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얘기한 것이다.
이 죄명은 자금의 출처와 관련된 것으로, 수사가 이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검찰의 칼 끝은 이건희 회장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천 장관이 이러한 것을 모두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검찰로서는 최고위 수장의 우회적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수사팀은 삼성과 관련된 비리의혹을 수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오히려 "필요한 수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수사팀의 공식 입장이다.
실제로 수사준비가 어느 정도 성숙됐는지, 또 수사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수 없으나 주변 여건상 검찰은 조만간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 부회장의 소환 조사에 이은 구체적 행보를 내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대검 중수부가 2002년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 삼성 채권 500억원의 행방을 쫓고있는 작업도 삼성의 `자복'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삼성의 1997년 대선자금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한두 개가 아니다.
비록 참여연대의 고발이 있었다고는 하嗤?그 내용이 안기부의 불법 도청에서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검찰의 발목을 잡는 원인 중 하나이다.
검찰이 수사 착수의 명분을 `세풍 사건 재수사'로 잡아 삼성을 직접 겨누어 자금 출처 수사를 하겠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출처를 밝힐 확률은 무척 낮아보인다.
이미 8년이 지난 일이어서 지금 시점에서 삼성 구조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나계좌추적을 통해 돈의 출처를 밝혀낸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 그룹의 회계장부를 몽땅 뒤져 비자금 등을 찾겠다고 나설 경우에도 승산은마찬가지다. 오히려 국가경제를 위협한다는 재계의 비난을 뒤집어쓰기 쉽다.
삼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파고가 높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이러한 현실적 여건을 두루 고려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입력시간 : 2005/08/24 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