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고이즈미 총리 초청 만찬장. 외무성 부속건물인 이이쿠라 공관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사회자가 만찬이 끝났음을 알렸는데도 이날 만찬의 주인공인 노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자리를 일어서지 않고 1∼2분간 대화를 계속한 것이다.
이 때문에 참석자들은 본의 아니게 즉석에서 `한·일정상회담`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만큼 만찬장에서 두 정상간 대화는 뜨거웠고 진지했다.
■ 갈수록 日 국민·언론 긍정 평가
두 정상은 이에 앞서 공식회담에서도 당초 예정시간보다 20분을 넘겨 주요 현안을 논의할 정도로 친밀감을 표시했다.
일본 정부의 오구치 의전장을 비롯해 한·일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두 정상이 깊은 신뢰관계를 쌓았다”고 평가했다.
비단 고이즈미 총리뿐만이 아니다. 방일기간 중 노 대통령에 대한 일본 국민 및 언론의 평가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 방일 기간 중 통역을 담당했던 외무부 장혜령 사무관(동북아1과)은 “행사가 거듭될수록 반응이 좋았다. 귀국할 때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상외교에서 당면 현안에 대한 조율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대통령의 긍정적인 이미지 구축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경우 일본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무현 알리기`는 또 하나의 숙제였다. 개인적인 홍보 차원을 넘어서 양국 국민간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선 이같은 `통과의례`가 불가피했다.
■ TBS행사 천황도 `이례적` 언급
이 과정에서 특히 일본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 8일 TBS가 방영한 `일본 국민과의 대화`였다. 9.2%의 공식 시청률을 기록한 이 행사는 맑은 날씨에 행락 인파가 많았던 휴일 저녁 프로그램임을 감안하면 `대성공`이라는 것이 TBS측의 자평. 이 행사는 1,100만명의 일본 국민들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시종일관 진솔한 태도를 견지했다. 일본 국민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사 등 민감한 현안을 피하지 않았고, 자신의 철학·정치역정 등을 당당하게 설명했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제작진이 `성공 자축연`을 가질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9일 오후 작별인사차 영빈관을 찾은 아키히토 천황은 “어제 방송을 보았습니다. 대단히 잘 되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천황의 이러한 언급은 이례적인 것이었고, 각 방송사가 뉴스시간에 특별히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재계도 노 대통령이 경단련 등과의 간담회에서 과거 일본을 방문한 한국의 대통령과 달리 “우리도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는 식의 솔직한 어법을 구사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단련의 한 관계자는 “뜻밖이었다. 오히려 한국투자에 호감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 솔직한 어법에 `한국투자` 약속
이같은 `노무현 알리기`는 10일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이 “유화한 표정·강한 의지, 한국의 전후세대 첫 대통령으로서 방일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국민들에게 남긴 인상이다”라고 사설에서 언급함으로써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방일기간 중 일본 정부와 국민들에게 각인된 `친근한 노무현` 이미지는 앞으로 한·일관계가 보다 굳건해지는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것이 외교 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박찬일 대신증권 신설동지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