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으로 관계 소원후<br>경제인 특별사면등 화해무드<br>"한미 FTA 최대업적" 꼽아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개혁’ 에서 중반 이후 ‘실리’로 대재벌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지난 2006년 12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인 접견 행사에서 노 전 대통령과 4대 기업 총수 및 경제단체장들이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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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前대통령-재계 '애증의 5년'
재벌개혁으로 관계 소원후경제인 특별사면등 화해무드"한미 FTA 최대업적" 꼽아
박태준
기자 june@sed.co.kr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개혁’ 에서 중반 이후 ‘실리’로 대재벌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지난 2006년 12월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인 접견 행사에서 노 전 대통령과 4대 기업 총수 및 경제단체장들이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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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운명을 달리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그와 재계와의 관계는 말 그대로 '애증'의 연속이었다.
24일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시절 기업이 개혁의 대상으로 비침에 따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깨끗한 정치를 실천함으로써 기업환경이 투명해졌고 기업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회고했다. 특히 재계는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미에 정치적 지지기반이었던 진보세력의 비판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뚝심으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 체결한 것에 대해서 "그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재벌을 개혁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
지난 2002년 대선과정에서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이 말을 강조했다. 재벌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당연히 노 전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재벌과의 관계가 매끄러울 수 없었다. 2003년 3월7일 첫 국정토론회에서 노 전 대통령은 "5년 내내 쉬지 않고 개혁한다. 그러면 개혁대상도 피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 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ㆍ금융정책의 대표적인 개혁정책으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이듬해 1월 재정경제부는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에 따른 부작용 방지 로드맵'을 잇달아 발표한다. 개별기업과 기업집단, 경영의 투명성과 소유지배구조,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이 로드맵의 기본 목표였다.
그러나 활력을 잃은 국가 경제가 내리막을 걸으면서 "우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게 되자 상황은 바뀌었다. 2005년 5월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 간담회'에 참석한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 개혁 혹은 규제로는 재벌 기업의 순기능을 끌어낼 수 없음을 인정한 것.
이후 특별사면ㆍ복권에 경제인이 대거 포함되며 화해의 무드가 조성됐다. 절정은 2006년 11월 발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 참여정부는 재벌 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순환출자 등의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대기업과의 공조를 모색했다. 당시 재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투자 활성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다소 역부족"이라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정치권 내부에서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완화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봄, 또 하나의 승부수를 띄웠다. '한ㆍ미 FTA' 추진. 그는 그 해 2월 열린 6차 대외경제위원회에서 "한ㆍ미 FTA 협상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된 것"이라며 자신의 소신이었음을 언급했다. 이듬해 4월 한ㆍ미 FTA가 체결될 때까지 국내는 말 그대로 'FTA 정국'이었다.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리며 지지자들도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개방한 역사가 성공했다"며 반대론자들의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한ㆍ미 FTA가 체결된 직후인 2007년 4월2일 그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FTA는 도전이며,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도전해왔고 성공했다. 앞으로도 성공할 것"이라며 1년여에 걸친 험난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계는 그에 대해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에 대한 그의 철학과 신념, 그래서 뿌려진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결실을 맺을지 아직 제대로 확인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盧 전 대통령 영정 본 분양소로 이동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盧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본 분향소로 옮겨졌다. 한명숙,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영정을 앞에서 들고 뒤로 아들 건호 씨와 가족들이 따랐다./ 김해= 한국아이닷컴 고광홍기자 kkh@hankooki.com kkh@hankooki.com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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