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및 외자유치 과정에서 2조원이 넘는 계열사 자금을 개인회사에 불법 지원한 정몽원(47) 전 한라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서울지검 외사부(박영렬 부장검사)는 24일 지난 97년 한라시멘트, 만도기계, 한라건설 등 3개 그룹 계열사로부터 2조1,000억원을 빼내 개인 회사인 한라중공업에 불법 지원한 박성석(60) 전 한라그룹 부회장과 장춘구 전 정상화추진 상무, 문정식(45) 전 기획실 부사장 등 3명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회장 등은 지난 97년 한라시멘트와 만도기계, 한라건설 등 3개 그룹 계열사로부터 2조1,000억원을 빼내 한라중공업에 지급보증 및 자금대여 등 명목으로 불법 지원한 혐의다.
정씨 등은 담보 등 자금확보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주주총회나 이사회 동의를 거치지 않고 한라중공업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결국 한라그룹은 97년 12월 부도처리 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정씨 일가가 만도기계 1%, 한라시멘트 25%, 한라건설 20%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한라중공업의 경우 정씨가 91%, 형 몽국씨가 9%의 지분을 보유해 사실상 정씨의 개인회사라고 말했다.
정씨는 그룹이 부도난 뒤 구조조정 과정에서 외자를 유치해 갚는 조건으로 한라시멘트 부채 1조880억원 중 6,363억원을 탕감 받았지만, 이 회사 전체 자산의 3분의2만 프랑스 라파즈사에 매각하고 지분 30%(951억원 상당)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는 RH시멘트라는 가교회사를 세워 한라시멘트를 라파즈에 매각하면서 5억원의 투자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일부만 매각했다"며 "라파즈에서 2억달러만 들여오고 국내 은행에서 2,500억원을 빌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 전 회장의 한라시멘트 지분이 16%였으나 구조조정 뒤 회사 지분이 오히려 30%로 높아졌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정씨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동생인 아버지 정인영씨로부터 주식을 물려 받으면서 증여세 17억원을 한라건설 자금으로 냈으며, 한라건설 유상증자 대금 34억원도 회사공금으로 납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정씨는 또 한라시멘트 매각을 위해 RH시멘트로 넘긴 시멘트 자산 중 376억원 상당의 한라콘크리트 주식을 자신이 지배하는 대아레미콘에 3억원에 넘겼으며, 32억원 상당의 한라건설 주식도 700만원에 인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정 전 회장 측은 "한라시멘트 해외 매각 당시 매각대금을 한푼도 받은 바 없고 단지 매입사인 라파즈사에서 정 전 회장을 합작 파트너로 삼아 30%의 지분을 인정해 준 것이므로 검찰의 혐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안길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