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매각 무산 배경·전망매각이 무산된 하이닉스반도체의 처리방향을 놓고 정부ㆍ채권단과 회사측의 벼랑 끝 싸움이 시작됐다.
정부는 하이닉스 문제가 거시경제 전반과 맞물려 있는 점을 감안해 매각을 다시 추진한다는 입장이나 회사측은 매출확대와 투자축소 등 독자생존을 위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양측 모두 법정관리와 파산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배수의 진으로 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떤 방안도 정답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황이어서 하이닉스 처리는 자칫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실정이다.
◇ 정부, 강경 분위기 속 매각 재추진
하이닉스 매각 부결 이후 정부의 분위기는 강경일변도다. 신규자금 지원은 물론 부채탕감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채권은행들이 50~70%의 대손충당금을 쌓아놓고 있기 때문에 금융시스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면서 "그러나 추가 지원할 경우 자칫 금융시장 전체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하이닉스의 진로를 크게 3가지로 압축한다. 독자생존을 모색하거나 ▦채권단이 보유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다음 마이크론과 재협상을 추진하는 방안 ▦법정관리에 돌입하는 극단적 방법 등이다.
정부가 볼 때 독자생존은 불가능하므로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이사회 멤버를 교체하고 MOU를 승인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걸린다는 게 부담이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의 재협상이나 제3자 매각이 여전히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채권단, 원점서 재검토
채권단은 당장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는 까닭에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일단 하이닉스측이 독자생존을 주장하고 있으나 신규투자 등이 없이는 중장기적으로 홀로서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토대로 '원점부터' 재검토해나갈 방침이다.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10월 말 채권단이 채무재조정을 결의하면서 3년간 회사채 만기를 연장해주는 등의 조치를 취해 당분간은 채권의 조기회수로 인한 유동성 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의 다른 관계자는 "조만간 주요 채권은행들이 모여 ▦매각 재추진 ▦독자생존을 전제로 한 보다 강도높은 자구책 요구 등 다양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앞으로 마이크론 또는 제3자와 매각을 재추진하더라도 이번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사전에 이 같은 걸림돌을 제거할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하이닉스, 비상경영체제 돌입
하이닉스는 정부와 채권단의 추가 지원이 없다는 전제 아래 모든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1일 오전 소집된 비상 임원회의에서 ▦매출확대 ▦투자 신축 조정 ▦지출 최대한 축소 등의 비상 경영방안을 논의한 것은 '고립무원' 상황에서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하이닉스가 내부적으로 마련한 독자생존 보고서는 '메모리 생존, 비메모리 분리 매각'으로 요약된다. 정부와 채권단이 추진해온 방향과 정반대다.
비메모리 사업 매각은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우선 1단계로 연내 비메모리 부문을 분리한 뒤 외자유치나 전략적 제휴 형태로 20% 이하(2억달러)의 소수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다.
이어 2단계로는 반도체시장과 사업여건, 비메모리 사업의 영업가치 등을 고려해 3억달러 규모의 추가 지분매각도 검토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부문은 영업자산이 1조7,000억원에 부채가 3,000억원인데 분리 때는 '빚 없는(debt free)' 클린 컴퍼니로 만들 계획이다.
하이닉스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사회에서 매각안을 부결한 것은 잔존법인이 도저히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법정관리나 파산 등 전멸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비상체제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석기자
김영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