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무늬만 '지분형 아파트'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南橘北枳)는 말이 있다. 같은 작물을 심어도 기후와 재배기법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안해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채택된 지분형 분양주택제도는 영국의 지분공유제(Shared Homeownership) 주택인 자가주택촉진제도(HomeBuy)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제도다. 그러나 이름만 유사할 뿐 제도도입의 목적이나 효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난 1979년에 집권한 영국의 대처 정부는 정부의 재정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임차인에게 매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이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도입한 정책이 LCHO(Low Cost Homeownership Initiatives)이고 지분공유제는 그 중 하나다. 이 제도는 지난 1998년 HomeBuy란 이름으로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 나라의 제도는 저렴한 비용으로 자가주택 구입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내용은 판이하다. 영국의 지분형 주택은 주택소유자가 주택구입 가격의 25~50%, 75%까지 구입지분을 선택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실수요자가 지분의 51%로 고정된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두 나라 지분공유제 주택제도의 결정적인 차이는 주택소유자가 매입하지 않는 주택지분 보유주체에서 나타난다. 영국에는 주택협회라는 비영리단체가 가지는 반면 우리나라에는 민간 투자펀드가 보유한다. 영국의 주택협회는 보유지분에 대해 3%의 낮은 임대료로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지만 우리나라의 민간 투자펀드는 주택가격 상승을 유일한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전매제한으로 주택처분기간이 10년 이후에나 가능하고 지분보유기간 동안 임대료가 없기 때문에 현금흐름도 확보하지 못 하는 민간 투자펀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투자자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한 기대수익률이 보장돼야 한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비공식 보고서에서 지분형 주택의 투자지분에 근거한 유동화 증권은 만기를 확정할 수 없고 투자기간 동안 현금흐름도 없으며 신용평가 등급 산정도 어렵기 때문에 자산담보부 증권을 발행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높은 금리하에서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매년 10% 이상 기대수익률이 보장돼야 하는데 이 경우 10년 후 주택가격이 2.6배로 상승해야 한다. 현재 2억원짜리 주택이 10년 후 5억2,000만원 이상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투자펀드의 높은 수익성과 주택가격의 안정은 절대로 병행할 수 없다. 지분공유제는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 환매조건부 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주택과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의 주택구입이 저렴한 가격으로 이뤄지도록 촉진하려는 제도다. 자가주택이되 공공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공공자가주택이라 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과도해 재정에 부담이 됐던 영국과 달리 아직 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의 3% 수준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는 저렴한 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분공유제 주택을 처음으로 도입한 영국의 자가주택제도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가주택을 확대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대한주택공사나 지방 도시개발공사가 건설해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하되 주택소유자가 구입한 지분의 나머지를 보유하는 방안이다. 이 지분에 대해서는 저렴한 임대료를 부과하고 주택구입자가 구입능력이 생길 때 조금씩 지분을 늘려가는 방식을 도입하면 된다. 민간자본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면서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보장하는 방법은 없다. 지금이라도 강남 귤이 제 맛을 낼 수 있도록 제도의 도입취지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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