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백남준과 '다다익선(多多益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고(故) 백남준 작가의 타계 1주기를 맞아 지난달 말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서면 한가운데 천장 꼭대기까지 치솟은 비디오탑이 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이 탑을 중심으로 각 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본의 아니게 ‘탑돌이’ 의식을 치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난 88올림픽 개막 당시 설치된 백남준의 기념비적인 비디오아트의 걸작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다다익선’은 1,003개의 TV모니터가 층층이 쌓인 케이크 형태로 일반인들이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세계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10월3일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개 모니터 속에서는 서울의 여러 풍경과 굿판 등 퍼포먼스 사진들이 동영상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등 그의 대표적인 비디오 영상 클립들도 정신없이 돌아가게끔 구성돼 있다. 또 비디오 탑의 맨 꼭대기에는 다보탑의 보주(寶珠)를 상징하듯 빨간 전구가 빛을 내고 있다.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다다익선’이라는 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 연유된 명칭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보통 물건이나 재산 등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에서 많음의 대상은 물건이 아니라 ‘수신(受信)의 절대수’, 즉 커뮤니케이션을 뜻한다. 백남준은 일생 동안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은 ‘예술의 독재’로 간주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참여와 소통’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결국 ‘다다익선’이라는 작품은 차별 없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고 들으면서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결국 조직의 혁신까지도 가능하게 하자는 백남준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백남준의 예술이 사후에도 널리 향수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예술 같지 않은 예술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품 생애 전반에 걸쳐 예술과 관객, 삶이라는 세가지 요소들의 상호교환적인 참여와 소통을 이끌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면서 탑을 돌듯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나선형 통로를 따라 그의 작품 ‘다다익선’을 감상하면서 지나간 시간의 파편들 속에서 꿈을 건져 올리는 현대판 ‘탑돌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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