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떠난자리 한국 입지강화 호기<br>81년 첫 진출이후 매장량 적어 경제성 논란<br>정부 자금·기술 지원 본격 개발, 채굴량 늘려
헬리콥터 유리창 너머로 드디어 배가 보였다. 인도네시아 중부 마두라섬 동쪽, 망망대해에 외로운 배가 홀로 떠 있었다.
원유시추 탐사선 ‘프론티어 더치스(Frontier Duchess)’의 갑판 앞쪽 헬리포트에 내린 시간은 오전 10시께. 자바섬 동쪽 도시인 수라바야에서 한시간 반을 날아왔다.
프론티어 더치스는 마두라 NEM-1 광구에서 해저유전을 탐사하고 있었다. 갑판에는 해저로 시추구멍을 뚫는 소리와 함께 해저암석을 퍼올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흔들리는 배에서 아무런 차질 없이 용케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석유공사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사무소의 시추담당
이재석 과장은 기자를 안내하면서 바닥이 미끄럽다고 연신 주의를 줬다. 이 과장은 석유공사가 이곳 시추선에 파견한 직원 2명중 한 명이다. 다른 한명은 파낸 암석의 성분을 분석하는 지질담당
전재석 과장. 이 과장은 해저에 구멍을 뚫고 전 과장은 파낸 암석을 조사, 원유 매장 여부를 판단하는 임무을 맡고 있다.
길이 147m, 폭 25m의 1만5,000톤급 선박인 이 배에는 석유공사 직원 2명을 포함, 미국ㆍ호주ㆍ뉴질랜드 등 각국에서 모인 110여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 과장은 “가장 힘든 점은 업무 특성상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이 구분돼 있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직원들은 하루 2교대 작업이 가능하지만 실질적인 책임자인 한국인은 잠시도 쉴 틈도 없다. 이 과장은 “하루 시추비가 30만달러나 된다”며, “값비싼 기술자들 임금까지 포함할 경우 작업이 하루가 늦어지면 그만큼 공사가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되는 셈”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원유층 존재여부의 확인을 위해서는 구멍을 바다밑 2,700m까지 파내려 가야 한다.
전과장은 “담배는 가능하지만, 사고 우려 때문에 술을 금지돼 있다”며,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현재 인도네시아 3군데에서 탐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수마트라 남동부 해상과 마두라 동부해상, 파푸아 중남부 해상이다. 나머지 2곳은 탐사작업을 일단 마친 상태로 정밀 지질검사 중이고 현재로는 마두라 광구에서만 시추 탐사작업이 진행중이다. 탐사가 마무리돼야 정확한 매장량과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러면 시추정을 건설, 본격 원유채굴에 나선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1981년 한국이 처음으로 해외유전 개발에 나선 곳. 민간회사인 코데코가 개발에 나선 마두라섬 서북쪽 해상의 ‘마두라 유전’이 바로 그곳이다.
코데코는 1985년부터는 실제 원유 채굴에 성공했다. 하지만 선구자로서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했다. 실제 매장량과 채굴량은 많지 않았고 경제성 논란을 겪으면서 회사가 부도를 내는 상황에 몰렸다.
정부는 첫 해외 유전을 포기하기보다 자금ㆍ기술을 지원했다. 정부 지원을 얻어 마두라 유전에선 채굴량 늘었고, 광구지분을 다른 회사에 넘기면서 회생의 발판이 마련됐다. 석유공사가 처음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것도 당시 코데코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석유공사는 이후 몇 군데 지분 및 운영권자로 참여, 경험을 쌓은 뒤 1990년대 들어 본격사업에 나섰다. 석유공사가 SK㈜ㆍ대성ㆍGS 등과 운영권자로서 확보한 3개 광구의 매장량은 석유 8억배럴과 가스 2조 입방피트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석유공사 권흠삼 자카르타 사무소장은 “지금으로서는 인도네시아가 매장량에서는 잠재력이 낮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상대적으로 개발관련 법과 제도가 완비돼 있고 외국기업이 많이 떠났다는 점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에너지 자원의 중요성은 매장량이 아니라 한국과의 근접성에 있다. 인도네시아는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며 천연가스 부국이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에너지 공급국이다. 지금은 생산량과 수출량이 감소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추정 석유매장량 40억배럴로 세계 25위, 생산량은 연 110만배럴로 세계 20위의 나라다. 가스는 더 풍부해 2조7,000입방미터로 세계 13위며 생산량은 연 760억입방미터로 세계 8위를 기록한다. 특히 한국의 주된 천연가스 공급지로, 2005년 기준 전체 도입량의 25%, 총 550만톤을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왔다. 석유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어 4,000만배럴로 전체 도입석유의 4.5% 정도다
최근의 인도네시아 에너지 정책은 한국에게 기회이자 위기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인도네시아 생산량이 점차 주는 반면 이 지역내의 자체 소비량은 점차 늘고 있다. 생산량 감소는 매장량 고갈과 해외투자 위축이 주요인이며 국내 소비량 증가는 산업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현상이다.
권 소장은 “생산량 감소에 위기감을 느낀 인도네시아 정부가 최근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다국적 메이저 석유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유전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석유공사가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업체인 프르타미나(Pertamina)와 손잡고 유전확보에 가속도를 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소비량 증가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인도네시아는 국내 정유시설의 부족으로 원유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양의 정제유를 오히려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정제시설 시장이라는 면에서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SK㈜는 지난해 10월 역시 프르타미나와 함께 수마트라섬 리아우에 윤활유원료 공장건설에 합의했다. 첫 성공을 발판으로 인도네시아 정제시장으로의 진출도 확대한다는 계획도 진행중이다.
SK㈜의 자카르타 지사 유병선 부장은 “2008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루 7,500배럴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라며 “인도네시아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도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