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비평가의 빅딜

창작은 어렵고 비평은 쉽다. 예술의 세계에서만 그런것이 아니다. 인간사 모든 일도 그렇다. 아무리 공들인 창작도 비평가의 눈엔 흠집이 보인다. 그렇다고 비평가가 직접 창작에 나설 일도 아니다. 비평가의 창작물은 그 비평가가 비평하여 마지않던 창작보다 결코 낫지않다. 십중팔구 더 못하다. 잘 만들지도 못하면서 남이 만든 것을 왜 헐뜯느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각기 재주가 다르다고 말할뿐이다. 창작하는 사람은 창작을, 비평하는 사람은 비평을 업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5대 그룹에게 맡겨놓은 자율적 빅딜이 성에 차지 않는다하여 직접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칫 훌륭한 비평가더러 훌륭한 창작자가 되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기 쉽다. 하기사 정부가 칼을 쥔다면 단칼로 무 자르듯 일사천리로 매듭을 지을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지어진 매듭이 최선이라는 보장은 하나도 없다. 정부가 직접 처리한다면 빅딜의 내용은 강제 통폐합이 되거나 선택적인 퇴출이 될것인데 그 어느것에도 최선이라는 보장은 없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정부가 일단 칼질한 것은 설사 그 칼질이 잘못된것임이 판명된다해도 쉽게 되물릴수 없다는데 있다. 당사자인 5대 그룹의 자율에 맡기는 빅딜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퇴짜라도 놓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칼질한 빅딜은 잘된것이든 잘못된것이든 그것으로 끝이다. 되물릴수가 없다. 속된 비유일지는 모르나 5대 그룹에게 빅딜을 주문하고 정부가 뒤에서 재촉하는 일은 밑질것이 없는 장사와도 같다. 잘되면 빅딜의 주창자이며 감시자인 정부에게 그 공이 돌아간다. 잘못되는 경우에도 그 허물은 정부가 아닌 5대 그룹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나설경우 잘못되면 그 허물이 모두 정부에게 돌아간다. 빅딜과 같은 긴박하고도 중차대한 사안을 어찌 장사속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며 실패를 미리 두려워 할수 있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것이 최선의 빅딜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며 설사 최선의 빅딜이 가려진다 하더라도 뒤탈없이 그것을 성사시키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어차피 누가 성사시키든 채무조정등 빅딜의 뒷치닥거리는 정부가 떠맡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뒷치닥거리의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서도 지금 정부가 직접 빅딜에 끼어드는것은 현명치 못하다. /鄭泰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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