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스 물량 차질을 반드시 VI로 되찾아야 한다.”(현대차 울산 2공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VI 물량을 확보하겠다.”(울산 5공장) 내년 상반기에 출시되는 현대차의 대형 세단 VI(프로젝트명)의 생산을 놓고 울산 2공장과 5공장은 아직도 대립과 갈등 속에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품질이 향상되는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로 변신하려는 노력이 펼쳐지는 겉모습과 달리 현대차는 끝을 알 수 없는 소모적인 내부 갈등에 시달리는 양상이다. 시장 주변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향한 현대차의 꿈이 이뤄지려면 마치 스스로 족쇄를 채운 듯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사 갈등 혹은 노노 갈등부터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차 생산성 기대 어려워”=사실 현대차가 공장 단위 또는 생산라인 단위의 충돌로 마찰을 빚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 9월 출시하겠다고 예고했던 제네시스 쿠페는 노조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 생산공장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이보다 앞서 일감이 부족한 울산 1공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충남 아산공장의 쏘나타 물량 일부를 돌리려고 했으나 생산설비만 설치한 채 노조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한 적도 있다. 결국 한 공장은 특근을 해도 주문을 못 맞춰 고객들의 불만을 사는 반면 다른 공장은 일감이 없어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기현상이 글로벌 메이커를 지향하는 현대차에서는 ‘일상’이 돼버렸다. 현대차는 신차종을 양산할 때 노사 간에 사전협의를 통해 시간당 생산대수(UPH)를 결정한다. 생산량 조절에 대해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은 직원의 행복지수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꽤나 이상적이다. 이 같은 합의가 원만하고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잡음과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업보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에서는 수요에 따른 생산이라는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무시돼 있다”며 “따라서 생산성의 극대화를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되풀이되는 정치파업=현대차에서는 일상이 된 기현상은 노조의 투쟁 방향에서도 목격된다. 지난해 6월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가 주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한미 FTA로 가장 큰 혜택을 누리게 될 자동차 회사 직원들이 생산현장을 팽개쳐두면서까지 이를 반대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무대의 패자로 우뚝 설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통과해야 할 난관과 험로가 널려 있는 현대차.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현대차 노조에서 정치투쟁을 분리하는 것이 ‘신기루’ 같다. 민주노총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위한 파업’ 찬반투표 결과 노조원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 전체 투표로는 찬성’이라는 논리를 펴며 참여를 선언했다. 지난 한달간 단 한 차례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않던 대각선 교섭의 결론 역시 지난달 29일의 ‘금속노조 중앙교섭 파업 찬반투표’였다. 윤여철 현대차 사장은 이와 관련, 지난달 26일 담화를 통해 “우리 노사가 조금만 양보하고 좀 더 노력하면 지금보다 훨씬 큰 안정과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텐데 왜 이런 기회를 우리 스스로 무산시키려 하는지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완성차 업체 노조도 "산별교섭 불합리하다" 지난해 임단협 무분규 타결로 노사관계에 일대 전기를 기대했던 올해 현대차에 찾아온 가장 큰 시련은 산별교섭이다. 산별교섭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규모와 경영여건의 격차가 큰 기업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 이 때문에 각 기업의 다양한 현실이 반영되기 힘들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다중교섭은 다중파업을 낳을 수 있다”면서 “산별교섭 체계가 인정된다면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의 하청ㆍ영세업체들은 산별교섭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면 따로 교섭을 요구하게 되는 등 시간ㆍ비용 등의 측면에서 불합리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완성차 업체 노조들도 산별교섭의 불합리성을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GM대우 및 쌍용차 노조는 최근 한달여 동안 계속된 대각선 교섭에서 금속노조가 요구한 중앙교섭 의제가 아닌 임단협 관련 사안만을 논의하는 실용적인 자세를 보였다. 쌍용차 노조의 한 관계자는 “노사 상생이 목적인데 협상을 무리하게 이끌어갈 이유가 없다는 데 조합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