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의 구속이 재벌개혁의 신호탄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취임하는 노무현 대통령도 원칙적인 이야기이지만 “SK와 같은 수사가 다른 기업에도 형평성 있게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고 밝혀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노동부가 두산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를 확인,관계자를 사법처리키로 한 것도 심상한 일이 아니란 점에서 재계는 `개혁한파`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두산이 논란을 빚어온 대주주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전격적으로 무상 소각키로 한 것도 개혁한파를 빗겨나가기 위한 몸부림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시민단체는 두산이 작년 10월 해외발행한 BW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로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끼치고 지배주주 일가의 편법증여수단으로 악용한 의혹이 있다고 조사를 요구한 바 있어 이에 대한 검찰의 수사여부가 관심사였다.
SK그룹에 대한 수사도 최태원회장의 구속으로 끝나지 않고 손길승회장까지 검찰이 소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경련회장에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은데다 오너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란 예상을 깨는 것이다. 이것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 재계는 한동안 개혁한파에 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사회에서 정당한 부의 대물림을 나무랄 수는 없으나 우리사회에선 이와 거리가 먼 온갖 편법 탈법수단을 동원한 부의 대물림이 공공연하게 이뤄져 왔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부의 대물림이 관행으로까지 자리잡았다. 최태원회장에게 배임혐의가 처음 적용된 오너와 그룹 계열사와의 비상장주식 내부자 거래도 그 중의 하나로 시민단체에 의해 지적된 것이다.
정부의 재벌개혁의지가 단호한 만큼 이젠 공은 재계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 재계도 새 정부의 강한 재벌개혁의지에 당황하고 긴장만 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스스로를 추스르고 정당치 못한 부의 대물림 관행은 떨쳐버려야 한다. 증여나 상속세율이 높기 때문이라면 이에 대한 재계의 의견을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 경제를 위축시킨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부도 재벌개혁의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필요하지만 의욕이 넘쳐 소나기 오듯 몰아치면 경제가 위축된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외 경제사정이 너무 어렵다. 재벌개혁은 어정쩡하게 끝나지 않도록 차근차근 확실하게 다지면서 진행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와 함께 공정치 못한 부의 대물림이 성행하는 것이 증여나 상속세율이 너무 높기 때문이란 일부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형욱기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