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5일] <1251> 벨벳 이혼


1992년 11월25일, 프라하.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회가 헌법 542호를 통과시켰다. 골자는 연방 해체. 분리날짜를 12월31일로 못박았다. 연방 해체를 규정한 마지막 헌법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는 1918년 연방 구성 이래 74년 만에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독재 체제가 1989년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무혈혁명(벨벳 혁명)으로 막을 내렸듯이 분리에서도 유혈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는 ‘벨벳 이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벨벳 혁명의 주역이었던 문인 출신 하벨 대통령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방은 왜 갈라졌을까. 상이한 민족구성과 언어도 작용했지만 불만은 경제력 격차에서 터졌다. 체코 지역은 중세 보헤미안공국 시절부터 다져온 공업기반 위에 민주화 이후 경제가 급성장한 반면 군수공업 외에 이렇다 할 제조업이 없는 농업지대였던 슬로바키아 지역은 옛 공산권에 대한 무기수출 격감으로 경제난을 겪었다. 실업률이 한자릿수였던 체코 지역과 달리 슬로바키아 지역은 20%가 넘는 고실업에 시달렸다. 민주화 이후 연방정부 보조금이 대폭 삭감되고 서방자본의 투자도 98%가 체코 지역에 집중되자 슬로바키아 주민들은 ‘불편한 동거 대신 이혼’을 택하겠다’며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에 몰표를 던져 결국 연방은 해체되고 말았다. 연방재산(221억달러)과 주요 군장비도 2대1의 비율로 갈랐다. 분리 16년이 지난 오늘날 두 나라는 협력(관세동맹)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동유럽 경제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공동 가입해 서방의 일원으로도 인정 받았다. 분리과정에서 피를 봤던 옛 소련과 유고연방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도 칼보다 대화가 효율적이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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