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침묵하면 의혹만 커진다" 고심끝 결단

■ 삼성 '안기부 X파일' 관련 대국민 사과<br>"사회적파장 수습이 먼저" 강경론서 한발 물러서<br>"윤리·투명경영 강화 기업의 사회적책임 다할것"

삼성그룹이 지난 97년 대선자금 지원 의혹과 관련한 녹취내용이 담긴 일명‘X파일’ 공개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사태 수습을 본격화했다. 25일 X파일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삼성그룹 본사 전경.

삼성이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은 그동안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강경자세와는 다른 모습이다. 재계 주변에서는 “‘X파일’로 훼손된 그룹 이미지를 추스르는 작업이 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삼성의 주요 임직원들은 X파일이 불거진 지난 21일 이후 “불법도청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경한 어조를 내비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론의 동향을 예의주시했다. 삼성은 이번 사과문 발표를 통해 ‘윤리ㆍ투명경영’을 더욱 강화해 재발방지는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삼성은 다만 “불법도청에 의한 대화내용의 공개 및 유포 등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언론보도 등에 대한 법적 소송은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X파일로부터 시작된 사회적 파장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대국민 사과성명 나오기까지=삼성은 21일 이후 이날까지 ‘강경론’과 ‘사태수습론’이 내부에서 극심하게 엇갈리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강하게 대응할 경우 ‘오만한 삼성’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꺼림칙했으며 그렇다고 수습에 주력할 경우 X파일의 내용 자체를 100% 시인하는 결과를 초래해 ‘삼성=테이블 밑의 강자’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불거진 초기에는 법무실과 기획팀 등을 중심으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원칙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이 줄곧 불법도청 자료에 의한 언론보도에 대해 법적 소송 방침을 견지해온 것은 강경론이 주류를 이뤘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른바 ‘X파일’의 내용이 사실상 그대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더 이상 사태를 방치했다가는 삼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만 확산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었다. “침묵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의혹만 커지는 것은 물론 ‘반삼성’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세력들에게 특정한 목적에 의한 공격의 빌미를 계속 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개인이 아닌 그룹의 안위를 위한 일”=사과문이 발표된 25일 삼성은 오전부터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주재로 장시간 팀장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일단 대국민 수습노력을 펼친 후 여유를 갖고 득실을 따지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번 사과문은 X파일의 당사자가 아닌 ‘그룹 임직원 일동’ 명의로 발표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당시 정치상황을 감안할 때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그룹의 안위를 위해 일을 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 사실과 다르고 소문에 불과한 것도 있기 때문에 (불법도청 내용과 관련한) 사실관계에 대한 사과라기보다는 언론보도 사태로 그룹 자체가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따른 사과의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X파일’ 사태 새로운 국면에(?)=삼성의 이번 사과문 발표는 언론에 이어 시민단체가 직접 삼성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본격적인 논쟁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향후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삼성은 사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 이후 일부 시민단체의 반발은 물론 정부ㆍ여당과의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따라서 이번 사과문 발표를 계기로 윤리ㆍ투명경영 강화 등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국민기업’으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데 한층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경유착 등 과거의 그늘을 청산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경제회복이 최우선 과제인 현 시점에서 케케묵은 일을 끄집어낸다면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기류”라며 “삼성의 이번 사과를 계기로 특정 사안을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하기보다는 기업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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