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11월 28일] 서울 산동네

겨울이 왔다. 뒷산을 향해 넓게 트인 사무실 창을 열고 잔잔히 흐르는 새뮤얼 바버의 아다지오 운율 속에서 바스락거릴 것만 같은 가을공기와 낙엽 떨어지는 정취를 만끽하며 만추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쌀쌀해지면서 벌써 첫눈도 왔다. 초록의 넘쳐남이 지면서 숲 속 멀리 낙엽 쌓인 오솔길도 보이고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여러 산새들도 눈에 띄면서 그들의 부스럭거림이 더 잘 들리는 듯하다. 점심식사 후 뒷산 공원 넘어 산책을 하면서 평소 보지 못했던 조그만 산마을을 보았다. 고급아파트 뒤 산비탈 밑의 나무그늘을 따라 작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인데 늦가을 낙엽이 지면서 쉽게 눈에 띄었나 보다. 한창 떠들썩하던 이웃 동네 재개발의 광풍은 그냥 비껴갔는지 늦가을 오후의 고즈넉한 동네는 주변에 종이 한 장 흐트러짐 없이 말끔했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면 빗자루 질이 잘 돼 있는 깨끗한 골목에 아이들의 ‘까르르’하는 웃음 소리가 가득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왠지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아파트보다는 조그만 판잣집들이 더욱 정겨워보인다. ‘가을 풍경’하면 세 가지 색이 떠오른다. 은행의 노랑, 단풍의 빨강, 그리고 이들의 색을 돋보이게 해주는 사철나무들의 푸른 초록빛. 물론 이런 단색이 아닌 복잡 다양한 색도 있지만 그래도 이 세 가지 색이 제대로 어우러질 때 진정한 가을의 아름다움이 배어난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다양성이 주를 이루고 개인의 관념이나 혹은 자신을 무언가를 통해 표현할 때 남들과 다르다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장점이 되는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 산속 조그만 판잣집들 나름대로 힘들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위의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아파트로 가득한 우리 도시에 아직도 산속에 포근하게 자리하고 있는 조그마한 동네가 있다라는 것이 오히려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재개발을 하면 지역 주민들은 새로 짓는 아파트나 동네에 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환경을 새로운 것으로 너무 변화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사람들이 살던 기존의 삶의 터를 소중히 간직하며 좀 더 편하고,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주변과의 다양한 조화를 이루며 계속 살아나갈 수 있는 그런 서울의 산동네도 남아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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