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칼럼/12월 16일] 2008년 한반도는 멈췄다

억지 춘향으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 측과 이명박 정부의 닮은 꼴을 강조하려는 애처로운(?) 청와대판 코미디에 국민들의 실소가 채 그치기도 전 워싱턴으로부터 들려온 대통령의 말에 일순 숨이 멎었다. “선거때 (공약으로) 무슨 얘기를 못하겠느냐” 오바마가 대선에서 한국 자동차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묻는 기자 질문에 따른 단순한 답이었다고? 만인의 지도자로서 윤리, 말에 대한 책임 의식의 정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데도? 1년을 어물쩡 넘겨온 대선 공약인 대통령의 재산 기부에 대한 최근 논란이 괜한 트집은 아니다. 청와대가 이 문제에 이리 저리 한참을 재고 또 재고 있는 요즘은 유명인사들의 줄 이은 재산 쾌척과 함께 그 힘든 여건속에도 서민들의 기부금이 오히려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 우리 마음에 한 줄기 따사로움을 전하는 때다. 단절의 한해, 국제 흐름과 엇박자 희한하게도 청와대 사전에는 적어도 인척관리의 측면으로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단어는 없는 듯 하다. 전두환에서부터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인척들에 의한 권력형 비리 사건은 단 한번 예외 없이 저질러졌다. 여론의 화살에도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의 친형을 아예 정권의 한 가운데 자리잡게 했다. 민간의 일로도 겸연쩍을 듯 하건만 어쨌든 대통령의 형이 실세 중의 실세 임을 입증하는 정황들은 지금도 불쑥불쑥 드러나고 있다. 민주 국가에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이 나라가 그런 문제로 오랜 세월 넌더리 나게 편지풍파를 겪어온 점을 숙고한다면 정권 자신을 위해서도 처신의 답은 명백해진다.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란 이렇듯 권력 주변 사적이고 사람 사는 소소한 상식의 문제들로부터 시작된다. 어마어마한 것, 거창한 정치 사안들로부터 믿음이 깨지는 것 만이 아니다. 지도자들이 그릇된 말 한마디, 처신 하나가 온 나라를 뒤흔든 단초가 된 게 바로 지난 1년이다. 그런 면에서 2008년을 규정하는 한마디 말을 꼽는다면 단연 ‘신뢰’다. 그 단어 하나에 국내는 물론 지구촌 전체도 술렁거렸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국내와 국외가 극명히 다른 점에 지금 우리는 답답하다. 한반도 땅 신뢰의 붕괴는 새 정권의 출범과 함께 했다. 인사(人事)에서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쏟아내는 정책마다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스스로 불신을 자초했다. 전(前) 정권을 아마추어라고 맹 비난했던 집권 세력이 보여준 건 한 술 더 뜬 ‘무개념’의 통치, 정치 경제 가릴 것 없었다. 우리가 1년 내내 죽을 쑤는 동안 한반도 바깥은 신뢰의 문제와 관련 세계사적 대(大) 변혁을 일궈냈다. 흑인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 인류 역사 이래 철통처럼 굳건했던 인종 편견의 옷을 일거에 벗겨 버린 혁명, 신뢰의 승리다. 오바마의 집권과 절묘히 맞물린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글로벌 경제 위기. 그 경제적 재앙도 따지고 보면 신뢰의 문제가 본질이다. 빚과 신용으로 뒤범벅된, 금융공학이란 마법으로 실물 거래 없이도 자본이 자본을 무한 창출, 거품을 만들어 가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뢰의 붕괴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당장은 고통의 시간이지만 세계가 그 마법의 도덕적 해이를 깨닫게 된 올해는 인류사 전체로 보면 역사 진보의 한 과정 임에 틀림없다. 신뢰 회복해 세계 신질서 동참을 부자에게 월등 혜택이 돌아가는 세제 정책을 어제 내놓고도 오늘은 서민을 만나 그들을 위해 잠 못이룬다는 식의 말을 너무도 쉽게 던지는 대통령의 특이한 언어 구조. 그 불일치, 그런 식의 통치가 국민들에게 심어 준게 정권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다. 지난 시간 비록 죽을 쒔어도 내일이 나아지기 위해서 집권층이 우선 해야 할 일은 열일을 제끼고 국민이 정권을 신뢰하도록 말하고 행동해 국가적 분열을 막는 일이다. 오바마의 하이브리드(어우름)형 정부가 주도할 2009년 세계의 신질서. 그 역시 부시의 독선으로 추락해버린 미국의 국가적 신뢰 회복이 출발점이며 올해 문화인류적 통섭의 세계사적 흐름은 보다 확대될 것이다. 2008년. 세계는 나아갔고 우리는 멈췄다. 새해, 정권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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