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공영방송 개혁과 TV수신료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현상을 관장할 기구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적합하다며 기구의 틀을 발표했다. 시대변화에 맞춰 제도가 정비되는 것은 국가와 국민경제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방송 분야에 아직 답보 상태로 있어 해당 산업계와 국민 모두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과제가 바로 TV수신료 문제이다. 지난해 KBS이사회가 국회에 제출한 TV수신료 인상안은 정치, 문화, 산업적 파급이 수반된 중요한 사항으로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결론 도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필자는 우선 TV수신료 인상으로 돌아오는 국민적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TV수신료는 KBS를 위해 사용하는 재원이 아니라 EBS(교육방송)를 포함한 공영방송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준조세 성격의 특별부담금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의 어떤 가치 때문에 국민들이 수신료를 지불해야 하고 또 공영방송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KBS와 EBS는 물론이고 MBC도 공영방송을 표방하고 있으며 민영방송인 SBS도 각종 규제에는 공영방송에 준하는 견제를 받고 있다. 공영방송의 책무인 ‘보편적 서비스’는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원하는 방송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말한다. 바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국민들이 공영방송에 수신료를 내면서 질 좋은 서비스의 제공과 투명한 경영을 요구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융합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의 상황에서 국내의 많은 언론 매체들이 선진 공영방송 시스템이라는 잣대로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활동을 재단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공공의제로 논의되기보다는 사회집단의 개별적 요구와 공영방송의 변명만 산발적으로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공영방송의 전형적 모델로 꼽히는 서유럽의 공영방송은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공적 재정지원의 뒷받침이 보장된다. 상업적 이윤추구를 위한 경쟁의 틀 속에서도 자유시장의 예외적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 창조적 실패의 감수를 통한 문화다양성의 확대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원조달의 안정성과 시장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다 해서 공영방송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으며 공영방송도 스스로 설정한 목표와 수행ㆍ평가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려는 노력이 계속하고 있다. 반면 공공재원의 비중이 낮아 60~70%의 수입을 광고나 상업적 이윤으로 충당하는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재원구조는 사회적 민감성을 고려하고 언론의 책임을 준수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프로그램의 실패가 곧 광고수입의 저조로 직결되기에 시장에서 성공한 상품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거나 대규모 수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저급한 방송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금과 같은 공영방송의 왜곡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 상업적 이윤추구나 경쟁몰두 대신 사회적 요구에 대한 책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용자의 관심만 좇는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성찰적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사회에 장기적 이득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곧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수신료를 통한 공공재원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공공의 의제로 논의하기 위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공영방송 종사자로 하여금 최종 서비스 대상자가 기업이나 권력이 아닌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TV수신료는 KBS뿐만 아니라 EBS 등 공영방송의 발전을 위해 긴요한 재원이다. 한편 역대 정부가 교육의 중요성을 말로만 강조해온 결과 현재 EBS는 TV수신료 중 3%를 배분 받고 있으며 이는 EBS 전체예산의 8%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신료 인상시기와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용돼야 하는가의 분배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TV수신료 인상 문제를 계기로 KBS와 EBS등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개혁 요구가 강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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