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은총재와 점쟁이

8일 박승 한국은행 총재와 기자들의 점심 자리. 박 총재는 이날도 예의 ‘낙관론’을 펼쳤다. 가계부채가 줄고 유가가 꺾일 전망이어서 하반기에는 내수가 살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이날 내놓은 ‘하반기 경제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국제유가가 예상외로 급등하면서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이 저하되고 가계채무 조정이 장기화하고 있으며 성장과실이 일부 부문에 편중됐고 고용구조 역시 취약하다’는 것. 한마디로 소비는 크게 호전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은의 경제예측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물음에 박 총재는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사실입니다.”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은의 경제예측 능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아주 용한 점쟁이를 데려와야 합니다.” 총재의 답변은 경제 예측이 어렵다는 취지의 우스갯소리로 여겨진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성장률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이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국가 전체의 경제운용 방향을 제시해야 할 중앙은행의 시선이 밝은 곳에만 고정돼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만 비쳐지지 않는다. 최근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현재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카드대란의 일정 책임이 한은에도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지난 2002년 초 한은이 가계부실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하고 내수진작을 옹호함으로써 카드부실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경제 예측이야 어차피 틀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가능한 긍정적인 쪽으로 해석하려는 한은 총재의 의도는 이해가 간다. 경제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만큼 ‘나빠진다, 나빠진다’ 할수록 더욱 악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론은 더 큰 파국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외환위기와 카드 사태의 밑바닥에도 낙관론이 깔려 있다. 객관적인 수치를 근거로 가감 없이 현재 우리 경제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내놓는 것은 ‘점쟁이’가 아닌 한국은행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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