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거꾸로 가는 연금개혁 국민허리 휜다

■ 공무원연금 적자 2030년 207조퇴직자 늘어나는데 현직 공무원수는 줄어 결국은 국민들이 메워야 할 공무원연금 적자규모가 30년도 안되는 기간 안에 207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외환위기로 큰 고통을 겪었던 국민들 앞에는 이미 69조원이라는 빚독촉장이 날아와 있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적자를 보전하는 데 써야 할 돈까지 합치면 단순 계산으로만 276조원이 들어간다. 천문학적인 숫자다. 이대로라면 어마어마한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재정투입이 불가피하고 국민들의 등허리는 휘다 못해 꺾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나라 살림이 거덜날 경우 경기침체와 국민 전체의 삶이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 연금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경제에 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연금개혁의 줄기가 최근 정국 말기를 틈타 거꾸로 뒤틀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저부담-고혜택 연금 구조 공무원연금의 적자 누증은 연금을 타야 할 퇴직자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작은 정부가 추진되면서 현직 공무원수가 줄어들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지난 82년의 경우 연금을 타가는 사람들 수는 3,742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퇴직 공무원수는 지난해 16만721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현재 공무원수는 91만3,192명. 연금 수급자수는 이 기간 동안 42.9배가 늘어난 데 반해 연금을 내고 있는 공무원수는 36.7%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까지 감안하면 이런 불균형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무원연금 구조가 적게 내고 많이 타가는 '저부담-고혜택'으로 짜여져 있는 것도 적자를 불러오는 주요인이다. 현재 공무원들은 월급의 8.5%만을 연금으로 내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8.5%를 보태 연금부담액이 보수의 17%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타가는 연금은 20년 근무했을 경우 임금의 50%나 된다. 근무연수가 20년을 초과하면 1년 단위로 2%씩 올라간다. 만약 33년을 공직으로 근무했다면 임금의 76%를 타갈 수 있다. OECD 평균(40%)의 두배에 가까운 규모다. 내는 사람수와 부담액은 적은데 타는 사람과 금액은 변함이 없으니 바닥이 금방 드러날 것은 뻔한 이치다. ▶ 거꾸로 가는 연금 개혁 사정이 이런대도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는 '나 몰라라' 식이다. 정부는 늘어나는 연금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2년 전인 2000년 공무원연금을 비롯한 군인연금, 사립학교 교직원연금 등 이른바 3대 연금에 대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연금지급기준을 임금인상률에서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바꾸고 연금부담률도 7.5%에서 8.5%로 높이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와 군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정부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연금부담을 높이는 채찍을 휘두르는 대신 적자는 무조건 정부가 보전해주겠다는 단감도 함께 줬다. 최근에는 어렵사리 얻은 개혁의 성과마저도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지난 10월31일 군인연금법이 연금지급기준을 예전으로 회귀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데 이어 공무원연금도 같은 날 행자위에 상정돼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 대부분의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국민연금 개혁까지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정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연금지급액을 낮추거나 지급시기를 늦추고 연금불입액을 높이는 방안을 올 연말게 내놓을 예정이다. 오는 2048년경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 재정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서다. 쉽게 말해 후대에게 돌아갈 고통을 당대에서 분담하자는 것. 그러나 수급권자가 많아야 수만명에 불과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수급자의 이해관계에 걸려 개혁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마당에 국민연금 수급권자 1,600만명에게 허리띠를 조르자는 얘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선진국을 타산지석으로 연금적자는 재정부담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국가와 국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신기철 금융감독원 연금감독팀장은 "오래 전부터 연금적자로 고생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부담은 늘리고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연금제도를 개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진국들이 수십년 전부터 연금지급기준을 임금상승률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CPI)로 바꾼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90년대 들어서는 연금지급 기준을 경제성장률에 연동시키는 나라들도 많다. 이른바 NDC(National Difined Contribution) 방식이다. 이런 조류에는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를 바꾼 동구권 국가들도 상당수 합류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연금개혁을 뒤로 돌리는 나라가 있다. 바로 한국이다. 박동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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