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꼬리표가 붙은 것도 아니고…. 우리만 봉입니까”. 교보생명이 LG카드에 대한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2조원)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발빠르게 3,025억원의 자금회수를 요구한 지난 27일 오후. 우리은행 본점5층 소회의실에 모인 8개 채권은행 대표들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만기연장과 자금지원에 동의한 것을 후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시장이야 어떻게 되는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라는 비난도 빗발쳤다. 일부 채권은행들은 “교보생명이 끝내 자금을 회수할 경우 더 이상 자금지원을 할 수 없다”고 버티기도 했다.
그러나 교보생명의 자금회수는 결국 관철(?)됐고, 채권단은 `앞으로 2금융권도 LG카드의 채무 만기연장에 동참해야 한다`는 힘없는 `주의촉구` 공문만을 LG카드에 보내며 허탈하고 분한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LG카드가 지난 21일 교보생명이 1차로 만기자금 상환을 요구하면서 한때 부도위기에 몰렸다가 겨우 되살아 난 상황을 되새기면서 당시 채권은행들의 자금지원이 이뤄지면 이를 갚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LG카드에 대한 채권은행들의 자금지원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교보생명의 회수를 계기로 마지 못해 만기연장에 협조하려 했던 2금융권의 다른 회사들도 이젠 `돈을 달라고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은행들도 금액은 크지 않지만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회수하면서 LG카드 사태는 다시 수렁으로 빠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설얼음판을 걷는 듯한 카드사태 속에 LG카드는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시작된 지난 24일이후 나흘만에 8,344억원이나 끌어다 써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채권단이 지원할 자금이 고작 1조원 정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조원이면 내년 3월까지는 괜찮다는 주장과는 달리 연말을 넘기기 어렵다는 분석까지 있다.
이제부터라도`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자금지원에 나서지 말고 판을 깨던가, 아니면 확실하게 지원에 동참하던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숱한 기업구조조정에서`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적 행태가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고 결국 기업도, 시장도 모두 깨진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진우기자(경제부) ra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