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태국 정국 '불안한 안정' 언제까지…

왕당파-탁신파 갈등 재연 우려속 아피시트 총리 내각 출범<br>내달 보궐선거 결과따라 정국 다시 요동칠듯<br>"아피시트 정부, 혼란상 해결 역부족" 평가도


탁신 치나왓 전 태국 총리 지지자들이 28일(현지시간) 방콕의 왕궁 앞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 이 이끄는 시위대의 일부는 29일 국회의사당을 봉쇄하고 아피시트 웨차치와 총리의 새 내각이 참여하는 정책설명회를 무산시킬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방콕=AP연합뉴스


우리나라 국민들의 해외여행 '0순위' 국가인 태국의 정정이 몹시 불투명하다. 최근까지 폭력적인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았으며 공항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가 등장할 정도였다. 태국 의회는 지난 15일 야당인 민주당의 아피시트 웨차치와 총재를 새 총리로 선출했다. 이로 인해 잠잠하던 태국 정국은 그러나 지난주말부터 다시 격랑 속에 휩싸이고 있다. 탁신 치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7년 6개월만의 정권교체에 반발하는 동시에 현 연립정부는 군부와 사법부, 그리고 반 탁신 단체가 결탁해 만든 불법정부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29일 국회 의사당을 봉쇄하고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태국 경찰은 이들이 폭력으로 의사당을 봉쇄할 경우 경찰력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새해 들어서도 정정 불안이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22일 아파시트 내각이 출범할 때만 해도 태국의 정국 불안은 당분간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의회에서 겨우 16석의 우세로 총리에 오른 아파시트 내각이 순항하리라고는 예상치 않았다. 최근 4개월간 3명의 총리가 나올 만큼 정국 갈등의 뿌리가 깊은데다가 과거 탁신계 연정에 가담했던 3개 정당을 끌어들여 집권한 아파시트 정권의 입지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2일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공석이 된 29명의 의원에 대한 내년 1월 29일 보궐 선거에서 만약 탁신계 정당인 국민의 힘(PPP)의 후신인 태국공헌당이 승리를 거둘 경우 불과 몇 주만에 아파시트 정권이 붕괴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설사 보궐선거에서 아피시트 총리가 과반 의석을 유지한다 해도 정권이 오래 지속되긴 어렵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탁신 지지 여부를 놓고 갈등 중인 두 진영 간의 반목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데다, 집권정당연합의 결속력도 강하지 않은 탓이다. 아피시트의 능력도 안개 정국을 헤쳐 나가기엔 역부족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군부와 왕당파의 지지 속에 최연소 총리에 오른 그이지만, 관직 경험이 전무하고 서민들과의 괴리감도 크다는 것이다. 아피시트도 최근 86억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는 등 민심 붙들기에 나서고 있지만 분열된 태국 사회를 하나로 묶기에는 힘이 부쳐 보인다. 따지고 보면 탁신 진영이 당장 가두 시위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는 배경에는 어차피 아파시트 정부가 '단명'할 것이란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같은 극도의 혼란 양상은 푸껫으로 대변되는 관광휴양지, 외환위기를 극복한 불교국가 등으로 태국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태국 정치사의 풍운아 탁신과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 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간에 갈등관계를 살펴보면 그 실마리가 풀린다. 자수 성가한 기업인 출신인 탁신은 기업형 최고경영자(CEO)를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2000년대 태국의 고속성장을 주도한 인물. 특히 지난 98년 타이락타이(TRT)란 정당을 세워 2001년 총리직에 오른 그는 기초의료보장제도와 농가부채 유예 정책 등을 추진해 농촌 지역과 도시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지난 2005년 총선 승리 후 탁신은 내리막을 걷게 된다. 한층 독선적으로 변한 탁신이 언론을 비롯한 시민사회 길들이기에 나서면서 지지층의 이탈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으로 탁신의 대중적 인기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는 푸미폰 국왕을 필두로 한 왕당파와 이를 지지하는 군부의 반격도 시작됐다. 탁신파와 왕당파간의 대결 구도가 본격화된 것이다. 지난 50년 왕위에 오른 푸미폰 국왕은 정치사회적 격변기마다 위기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등 국민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 탁신 일가는 19억달러에 이르는 주식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외국에 판 것이 발각되면서 탁신은 사임 위기에 내몰렸다. 특히 군부독재와 경제발전의 수혜계층으로 엘리트주의에 젖어있는 도시 중산층 세력들도 반 탁신 대열에 합류했다. 탁신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농촌 사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2006년4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했다. PAD를 위시한 반 탁신 세력들은 군부쿠데타를 유도했고, 그 해 9월 쿠데타는 성공해 탁신은 총리에서 축출되는 비운을 맞았다. 문제는 왕당파와 군부의 주도하에 치러진 지난해 연말 총선에서도 PPP가 승리한 것. 이 결과에 불복하는 반 탁신 세력은 지난 5월 거리로 다시 나섰다. 이후 PAD는 국제공항 등을 점거하는 등 시위 역량을 총동원, 결국 올 9월과 12월 탁신계인 사막 순다라벳과 솜차이 옹사왓을 물러나게끔 했다. 물론 두 전임 총리 모두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퇴진하는 형식을 따랐지만, 두 총리의 퇴진은 왕당파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PAD의 힘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로 통한다. 서구 언론들은 태국 정국이 향후에도 위태로울 수 밖에 없는 보다 근본적 원인으로 왕당파가 정권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반 민주주의적인 행태를 꼬집고 있다. PAD는 탁신과 그의 추종자들을 부패정치집단으로 낙인 찍고,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총리를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막가파적 행동을 일삼았다. 이들은 낡은 부패정치를 청산하려면 군부의 도움도 받을 수 있으며, 의회의 70%는 임명제로 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왕의 절대적인 영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에 의회정치가 정착할 수 없는 것이 태국 혼란의 근본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태국의 정국 안정은 탁신파와 왕당파간의 권력투쟁이 제도화된 민주주의 틀 내에서 해결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