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점유율 판단못해… "경쟁제한 결합아니다" 근거마련용 해석도공정거래위원회가 25일 국민ㆍ주택은행 합병에 대한 의견발표시기를 두달간 늦추기로 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금융계 및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당초 24일까지 두 은행의 합병인가 의견서를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하기로 했으나 시장점유율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해 일단 60일 동안 연기하기로 했다.
은행합병은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감위가 승인하게 되지만 이에 앞서 공정위와의 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국민ㆍ주택은행의 가계대출 취급액은 50조5,222억원으로 은행권 전체 취급액 113조1,971억원의 50%를 육박하고 있다. 특히 두 은행의 주택자금대출 잔액은 22조5,293억원으로 은행권 전체 취급액 26조5,814억원의 84.8%에 이르고 있다.
합병에 의해 특정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이 50%를 초과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공정위가 두 은행의 시장점유율 기준을 은행권으로 국한할 경우 두 은행은 가계자금 대출에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되고 특히 주택자금대출은 대폭 줄여야 한다. 그러나 기준을 금융권 전체로 할 경우 별다른 제한은 받지 않게 된다.
공정위가 어느 기준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신설되는 합병은행의 경영전략이 크게 달라지게 되며 다른 은행들의 경영전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향후 금융정책방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금융업에 대한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 제조업과 동일하게 단순히 시장점유율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시장범위를 어떻게 확정하느냐에 따라 점유율 여부가 달라져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ㆍ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회 관계자는 “공정위가 금감위에 내는 의견첨부는 합병에 있어서 요식행위일 뿐 공정위가 실제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며 “주택금융분야에 대한 시장점유율 역시 제도상의 요인 때문에 다른 은행이 못하는 것이 아니므로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금융계 주변에서는 관계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가 합병승인을 위해 ‘시장’을 은행권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금융권 전체로 확대, ‘경쟁제한적 결합’이 아니라는 근거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두 은행 합병시 소매금융 부문에 대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을 경우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금융상품 편재 현상은 최근 대기업 여신을 기피하는 금융계 현실에 비춰 기업금융 부문마저 악순환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국민ㆍ주택은행 합병작업은 은행장 선임, 대등합병문제, 조직간 갈등 최소화 방안 등 내부적인 문제에 치중해 있을 뿐 두 은행이 국내 금융기관 중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부분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국민ㆍ주택은행의 합병이라는 대명제로 밀려 은행권에서 두 은행이 특정분야에 대한 점유율이 90%에 육박하는 것을 도외시할 경우 향후 다른 은행의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이 저리의 금리로 가계부분을 공략하고 있지만 두 은행의 가계대출 및 주택자금대출 분야에 대한 지배력이 워낙 커 여간해서는 파고들기 힘들다”며 “특히 두 은행의 합병 뒤에도 국민주택기금을 그대로 부여할지에 대해서도 합병승인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말했다.
즉 두 은행의 합병을 승인하되 특정분야에 대한 규제를 가해야만 그 동안 가계금융에 치중해왔던 두 은행이 기업금융에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민열기자